시민의 힘으로 '기억의 터' 조성 … 디딤돌 하나에 1만원 모금 운동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 됩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몇 분 남아 계시지 않아요. 일본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기억이 세월 속에 묻히길 바라고 있어요. 그 분들의 아픈 역사를 이젠 시민들이 기억해야 합니다."
사진 이의종

26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최영희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조성 추진위원회'(추진위) 상임대표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의 제안으로 여성계와 문화계 등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만든 범국민 민간 기구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리고 잊히지 않도록 하기 위한 추모공원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기억의 터) 조성을 위한 활동을 한다.

평화란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실현되는 것'

기억의 터는 경술국치의 현장인 남산 통감관저터에 조성될 예정이다. 통감관저터는 가슴 아픈 일본 식민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1910년 8월 22일 이완용과 데라우찌 통감은 남산의 통감관저에서 한일강제병합을 체결했다. 이 같은 치욕의 역사 현장임에도 불구, 우리는 이 사실조차 망각하고 있었다. 2006년에야 입구를 지키고 있던 두 그루의 고목을 보고 그곳이 통감관저터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한 일제가 통감관저 앞뜰에 세운 하야시 곤스케 주한 공사의 동상 일부가 발견되면서 통감관저가 있었던 곳임을 알았다.

"기억의 터를 만들기 위해 준비위원회를 구성, 5개월여 동안 여러 후보지를 검토·교섭한 뒤 통감관저터로 결정했죠. 통감관저터는 우리의 아픈 역사가 시작된 곳이에요. 식민지 백성의 설움이 있는 남아 있는 곳에 일본군에게 인권이 짓밟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기억하는 공원이라….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죠."

최 상임대표는 대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윤정옥(91) 이화여대 명예교수를 통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한 눈을 떴다. 윤 교수는 우리 사회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처음 알렸다. 주도적으로 정대협을 만드는 등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사회적 여론을 이끌어내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조그마한 신문 조각을 손에 쥐고 애지중지 하시던 윤 교수님의 모습이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일본 오키나와에 정신대로 끌려온 할머니에 관한 기사였는데, 윤 교수님이 퇴직 뒤 그 곳을 꼭 찾아가야 한다고 몇 번이고 말씀하셨어요. 해서 제가 일본문화원 등지를 찾아다니며 관련 정보를 수집해보려고 노력했지만 도움을 드리지는 못했죠."

최 상임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잊어버리는 것은 우리가 역사 앞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방관 또한 인권에 대한 폭력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일"이라며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고통을 딛고, 세계 각국에 전쟁의 피해와 일본의 부도덕함을 알리는 평화운동가로 거듭나신 분들이죠. 기억의 터는 단순히 한국인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기억하는 일을 넘어서는 공간이 될 겁니다. 일본제국주의가 한국 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에 남긴 고통스러운 기억과도 연대해 가는 곳이 되도록 만들 계획입니다. '평화란 싸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정의가 실현되는 것'임을 보여 줄 겁니다."

아픈 역사 딛고 미래로 가는 '디딤돌=시민'

최 상임대표가 기억의 터 조성 사업에 나설 수 있던 것은 시민들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일본은 아직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어요. 아베 정부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 요구에 대해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으면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철거를 요구하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제일 의미 있는 것은 시민들이 기억하고, 분노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거라 생각해요. 때문에 기억의 터는 철저히 시민의 힘으로 만들 생각입니다. 작은 '디딤돌'들이 모여 더 큰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겁니다."

최 상임대표는 기억의 터가 부모와 자녀, 연인, 친구 등이 함께 손 잡고 와서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은 물론 평화운동가로 변화된 모습까지 기억할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 맞잡은 손들이 모여 아픈 역사가 잊히지 않고, 계속 이어지길 바라기 때문이다.

추진위는 내년 광복절까지 기억의 터 조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전국적인 시민 모금운동을 벌이고 있다. '디딤돌' 모으기 운동이다. 시민들의 후원이 디딤돌이 되어 기억의 터가 조성된다는 의미다. 디딤돌 하나에 1만원이다.

여러 개의 디딤돌 쌓기에 동참하려면, 추진위 사이트(cafe.daum.net/peace-memory, www.facebook.com/peace-memory)나 전화(02-324-0238)로 문의하면 된다.

김아영 기자 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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