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시민단체·법원, 사법부 개혁 토론회 … 사법행정권 민주화 방안엔 차이

개헌으로 '사법평의회 신설', 법 개정 통한 '사법위원회·법관회의 도입' 제각각

법원내 판사들의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활동을 방해하는 등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발생하면서 법원 내부는 물론 국회와 시민단체, 법학자들이 잇따라 '제왕적' 대법원장의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방안에서는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출근하는 양승태 대법원장│대법원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법원 고위간부의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에 대한 심의 결과를 확정키로 한 27일 오전 양승태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9월 임기를 마치는 양 대법원장은 윤리위가 내놓는 결론을 지켜본 뒤 판사회의 측이 요구하는 조사권 위임 등에 대한 입장을 내놓을 전망이다. 연합뉴스 권준우 기자

국회 개헌특위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헌법 개정을 통해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헌법적 독립기구인 '사법평의회' 신설을, 참여연대는 사법부내 독립적 사법행정기구(사법위원회)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반면 법원 내부와 일부 학계에서는 사법부의 독립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대법원장의 제왕적 권한을 분산시키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성창익 민변 사법위원장은 27일 오전 참여연대·민변·인권법학회와 노회찬·정성호·박주민·이용주 국회의원이 주최한 '법원개혁의 좌표찾기' 토론회 발제를 통해 "대법원장은 대법관 후보 제청권과 헌법재판소 재판관 3인 지명권 등 대법관회의의 동의를 얻어 법관을 임명할 권한 뿐만 아니라 법원행정처를 통해 전국 법원의 사법행정을 좌지우지하고 법관들의 임명, 연임, 보직, 전보, 징계 등 제왕적 사법행정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하지만 이에 대한 감시 견제 수단은 없다시피 해 사법행정권이 자의적으로 행사되거나 남용될 위험이 상존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사법행정권 남용의 위험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학술행사 축소 외압 등 의혹사건에서 드러난 바 있다. 성 위원장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법원조직법 개정만으로 대법원장의 제왕적 사법행정권을 제한하는데 한계가 있는 만큼 위헌의 논란을 없애기 위해 헌법 개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발상의 사법행정을 구현할 필요가 있다"며 "대법원장과 대법관회의, 법원행정처의 사법행정에 관한 권한과 기능을 헌법상 독립된 최고 사법행정기구(가칭 사법평의회)를 신설해 넘길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앞서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 자문2소위원회 사법부 분과는 26일 오후 국회의원회관에서 '국민이 신뢰하는 사법부'를 위한 헌법개정 토론회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개헌안 보고서 초안을 공개했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인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발제에서 "헌법상 기구로 사법평의회를 신설해 대법관 후보 추천권과 법관 인사권 등 사법행정기능을 모두 넘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가 소개한 '자문소위안'에 따르면 사법평의회는 16명으로 평의원을 구성되고 대통령이 2명, 국회가 8명, 법관회의가 6명의 평의원을 지명한다. 사법평의회는 6년 단임의 상임 평의원들로 구성되는 상설기구다. '자문소위안'은 국회 지명 위원은 5분의 3의 찬성을 얻어 지명하고, 법관 위원은 법관들의 선거를 통해 선출토록 했다. 변호사 자격이 없는 법학 전문가도 참여 가능성을 열어 놨다.

정 교수는 "국회 내 어떤 정파도 다수로는 평의회를 장악할 수 없도록 했다"며 "선출직 권력을 통한 민주적 통제와 법관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모두 실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 내부와 학계에서는 사법부 독립을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하거나 신중한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이희준 법원행정처 심의관은 이날 토론회에서 "인사·징계 등 각 위원회를 통해 외부 인사가 참여해 통제할 수 있는 장치는 지금도 마련돼 있다"며 "이런 모든 권한을 모아서 매머드 조직을 새로 만들려는 의도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심의관은 또 "세계 표준으로 통하는 '법원의 독립'은 '사법행정의 독립'을 포함하는 개념"이라며 "사법평의회는 외부의 견제를 넘어서 법원의 자율권을 박탈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방승주 한양대 로스쿨 교수는 "기본적인 문제인식과 취지에 동의하지만 아직 논의가 부족한 유럽 일부 국가의 제도를 들여와서 사법권력의 민주적 통제와 독립의 조화를 성공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든다"고 지적했다. 최재호 대한변호사협회 부회장은 "정치 권력인 입법부가 사법부의 인사, 징계와 운영 전반에 개입한다면 정치적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며 "헌법 전반에 걸쳐 다른 권력기관과의 권력분립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도 논의돼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27일 오전 토론회 발제에서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된 사법행정권을 분산하기 위해 인사권과 행정권을 별도의 독립된 기관이 처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면서도 "이를 헌법기관화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현재의 법원조직법을 개정해 사법위원회를 설치하고 대법원장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것으로 충분히 이 기능을 담보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지난 19일 100명의 대표 판사들이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모임을 갖고 '법관대표회의 상설화'를 요구했다. 이를 통해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에 집중된 사법행정권을 분산하자는 방안이다.

국회 자문위는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평의회를 새로 만드는 개헌안은 아직 깊이 있게 논의되지 않은 새로운 개헌내용"이라며 "이 개헌안이 실현되면 사법부는 대법원·헌재·사법평의회가 솥발처럼 대등하게 권력을 분립해 견제하는 구조를 갖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토론회에서는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기존의 관료화된 법관 폐습을 깨기 위한 방안들이 논의됐다. 자문위는 전관예우 금지에 관한 헌법적 근거를 명문화하기로 했다. 그동안 관련 입법이 논의될 때마다 퇴임 법관들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위헌성 시비가 제기돼 왔다.

자문위는 이에 퇴직 대법관이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전관예우금지 입법이 제정·시행되도록 헌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또 전관예우를 금지하는 대신 법관의 독립성과 책임성은 강화하도록 했다. 대법관이나 법관에 대한 임기제를 삭제하고 정년제만 남겨두면서 대법관·법관이 정년까지 소신껏 재판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대법관 수 24명으로 대폭 증원하고 임기(6년)를 폐지해 정년을 보장하는 방안과 법관의 10년 단위 재임용심사 폐지안도 나왔다. 또 헌법재판소 구성과 관련해서도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장이 각각 3명씩 지명권을 행사하는 헌법재판관 선출 방식을 국회가 선출하고, 임기를 현행 6년에서 9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제시됐다. 사회를 맡은 황도수 건국대 로스쿨 교수(개헌특위 자문위원)는 "토론회에서 나온 의견들을 바탕으로 자문위의 헌법개정안을 특위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문위 사법부 분과는 28일 다시 회의를 열어 이날 토론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숙의하고 사법부 개헌에 관한 보고서를 마련, 국회 개헌특위에 제출할 예정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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