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 전 분석가 피터 쾨니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촉발한 '무역전쟁'에 전 세계가 들썩이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이 아닌, '탈세계화'(De-Globalization)를 꾀하고 있으며 이는 위대한 미국을 재건하고 노동자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나와 눈길을 끌고 있다.

세계은행 경제분석가를 지낸 피터 쾨니히는 15일 온라인매체 '글로벌리서치' 기고에서 "수입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해 25%, 10%의 관세를 물리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담한 '보호무역정책'은 포퓰리즘과 대선 공약을 뛰어넘는 것"이라며 "세계화로 망가진 미국 경제를 바로잡는 차원"이라고 주장했다.

쾨니히는 미국 경제가 지향점을 상실한 공허한 전쟁, 인간이 배제되는 각종 서비스 머신(service machine) 등으로 끝모르게 추락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공식실업률은 4%대지만 구직단념자를 포함한 비공식실업률은 20%를 훌쩍 넘는다. 미국민은 생산이 배제된 극단화된 소비문화에 질식하고 있고 군산복합체와 주류 언론의 반러시아 선전선동, 급속히 악화되는 사회기반시설, 와해일로의 시민사회 등으로 2류, 3류국가로 전락했다. 세계화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미국의 속살이다.

쾨니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주의 무역정책 결정은 이같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나름의 처방"이라고 단언한다. 세계화는 신자유주의 경제학이 통제한다. 세계화는 진짜 경제학이 아니라는 것이다. 99.9%의 국민에게 해를 가하고, 0.1%의 극소수 엘리트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다. 트럼프가 천명한 '위대한 미국의 재건'은 이같은 오류를 바로잡는 차원이다. 생산공장과 일자리를 내쫓는 게 아니라 되찾는, 지역경제를 무너뜨리는 게 아니라 되살리는 무역을 하자는 것이다.

미국에만 해당하는 내용이 아니다. 쾨니히는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게 알맞은 처방"이라며 "그리스가 그렇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 아일랜드 프랑스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고 주장했다.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판매하자'(Local production for local markets)로 요약할 수 있는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미국이 1930년대 대공황을 극복하는 데 일조했던 모델이다. 유럽, 특히 독일이 2차 세계대전의 폐허를 딛고 일어서는 데 일조했던 모델이기도 하다.

나프타(NAFTA) 등 자유무역협정이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등 다자무역협정은 '지역에서 생산하고 지역에서 판매하자'와는 전혀 다르다. 이런 협정들은 예외없이 미국 거대 기업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목적을 가진 것이다. 미국의 지역경제와는 별 상관이 없었다. 쾨니히는 "자유무역협정은 미국 기업에겐 복음이었지만 국가경제엔 저주였다"며 "저임금 국가들에게 재화 생산과 서비스 제공을 아웃소싱하라는 당근책이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국 기업들에게 아웃소싱에 대한 반대급부로 막대한 세제혜택을 제공하며 본국으로 돌아오라 손짓하고 있다. 동시에 수입품에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면서 자국 시장을 보호하려 한다. 좋든 싫든 비틀거리는 미국 경제를 되살리자는 것이다. 과연 효과가 있을까. 그럴 수 있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현재로선 판단하기 힘들다.

쾨니히는 "경제는 정밀과학이 아니다. 서로 다른, 예측불가능한 요인들이 상호작용한 결과"라며 "인간을 중심에 둔 진짜 경제학은 정교한 공식에 기반하지 않는다. 흑백 논리도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그는 "반면 세계화를 찬양하는 신자유주의 이론은 알고리즘을 동원한 정교한 모델링 기법에 기반한다"며 "신자유주의 이론은 현실에서 벗어나 있다"고 비판했다.

트럼프는 올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미국의 교역국들에게 "각국은 스스로 다시 위대하게 만드는 법을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쾨니히는 "세계화의 전당에 모인 세계화 전도사들에게 따귀를 갈긴 격"이라며 "트럼프는 전 세계 국가들에게 '나의 방식을 따르라'는 신호를 보냈다"고 해석했다.

트럼프의 보호무역정책에 대해 유럽과 중국, 일본 등이 보복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하지만 그같은 보복조치로 난타전이 벌어지면 무역세계화의 참상은 더욱 더 선명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쾨니히는 주장한다. 그는 "세계화의 승자는 언제나 한줌의 기업 엘리트들이고 국가경제를 떠받치는 지역경제권과 노동자들은 철저한 패자였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30년이 걸렸다"며 "세계화는 국가경제를 팔아 기업이익으로 환원했다. 그 과정에서 민중은 불행했다"고 지적했다.

달러 중심의 통화정책에 대한 비판도 날이 서 있었다. 쾨니히는 "국경없는 무역에서 자본의 이동은 무한정한데 반해 노동력의 이동은 매우 제한돼 있다"며 "1913년 연방준비제도(연준) 설립법이 제정된 이후 100여년 동안 서구 중심의 달러 기반 통화정책은 호황-불황 사이클을 통해 실물경제를 조작해왔다"고 주장했다. 논리적으로는 현재의 통화시스템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즉 국가경제의 산출이 통화정책의 기반이 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로 통화정책이 국가경제의 기반이 됐다. 쾨니히는 "달러뿐 아니라 유로화 역시 유럽의 실물경제와 관계가 없다"며 "국제무역이 발 딛고 선 서구의 통화시스템은 사기다. 종이로 지은 집에 불과한 폰지사기다. 붕괴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쾨니히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역정책을 옹호했지만 트럼프라는 인물까지 긍정한 건 아니었다. 트럼프는 '예측불가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트럼프는 전쟁광처럼 북한에게 '분노와 화염'을 거론했고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앨 수 있다고 협박했다. 하지만 북한의 30대 지도자 김정은과 마주보며 협상하겠다고도 공표했다. 동시에 트럼프는 이스라엘 총리 네타냐후를 앞세워 이란을 중상모략하고 전쟁으로 절멸시킬 수 있다고, 더 많은 제재를 가하겠다고 협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쾨니히는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의 이익을 꾀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며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섣부르게 판단하는 허풍쟁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독자적 관세 부과를 선언하면서 우연인지 필연인지 탈세계화의 과녁을 명중시켰다. 쾨니히는 "이는 여론의 흐름을 보는 시험발사일 수 있다"며 "보다 많은 보호무역 조치가 뒤따를 수 있다"고 내다봤다. 세계화를 옹호하는 경제참모였던 게리 콘은 트럼프 대통령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해 결국 사임했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흔들리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것이라는 예상이다.

쾨니히는 "트럼프는 관세폭탄이 자국 소비자물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러스트벨트에겐 경제회생의 단초가 될 것이며 자동차산업 등을 포함한 분야에서 투자가 살아날 것"이라며 "또 핵심 경제지표인 일자리 창출에서 수천명의 일자리를 만들어 낼 것이고 백악관의 정치지도력에 대한 노동자의 신뢰도 높아질 것"이라고 예견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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