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토바대 헨리 헬러

오늘날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분열과 갈등을 이해하려면 1960년대 베트남전 당시 상황을 복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당시의 모순이 곪고 쌓여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캐나다 매니토바대학 역사학 교수 헨리 헬러가 20일 온라인매체 '카운터펀치'에 기고한 글에 따르면 1963년 11월 2일 베트남의 독재자 고 딘 디엠(응오딘지엠) 총통이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지원한 군부 쿠데타로 살해됐다. CIA는 디엠 총통을 제거한 뒤 보다 대중적이고 안정적이며 미국의 지시에 순응하는 정치인을 내세우려 했다. 미국이 보기에 디엠 정부는 친불교 기득권층과의 불화를 해소하지 못했고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한 민족해방전선을 분쇄할 군부를 만들어내지 못한 무능한 정권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기대는 무참히 깨졌다. 베트남 정국의 안정은커녕 더 심각한 정정불안을 낳았다. 쿠데타는 또 다른 5번의 쿠데타로 이어졌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미국은 1965년 지상군을 투입해야 했다.

디엠 총통 살해로 인한 혼란은 베트남에 한정되지 않았다. 당시 미국 역시 그러했다. 디엠이 제거된 지 3주 뒤인 23일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살해됐다. 뒤이어 린든 존슨 행정부가 들어섰지만 대학생과 흑인들의 격렬한 시위에 직면했다. 이들은 미국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정부가 해외에서 전쟁을 벌이고 있다고 인식했다. 미국 내 정정불안은 마침내 1965년 베트남에 대대적인 공습과 지상군 투입으로 이어졌다. 존슨 대통령은 취임하면서 '미국 내 만연한 빈곤과 전쟁하겠다'고 선포했지만 결국 그는 해외의 빈국을 겨냥한 전쟁을 수행해야 했다.

베트남전은 존슨 행정부의 기대와 달리 미국 내 불안을 잠재우기는커녕 반전시위와 흑인 민권운동을 촉발했다. 이후 10년 동안 미국 사회를 대대적으로 흔들었다. 베트남전은 촉매제였다. 정부와 군산복합체, 안보기관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수면 위로 밀어올렸다. 인종간 세대간 갈등이 표면화됐다. 이는 냉전 기간 미국 사회 저변에 잠재돼 있던 것이었다.

오늘날 많은 이들은 당시의 격변을 베트남전 종전과 함께 사라진 '단순 에피소드'로 치부한다. 당시 계급과 민권 인종 성 반문화 여성 동성애 등 다양한 저항의 스펙트럼은 일반 노동자의 계급의식으로 구체화되지 않았다. 1960년대 다양한 흐름의 저항운동은 저변을 넓혀 혁명운동으로 발전하지 못했다. 대신, 인종과 성 종교 계급 등 여러 기준으로 분화된 집단이 각각의 권리를 주장하는 데 주력하는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로 파편화되거나 자체적으로 소멸됐다.

하지만 당시 기저에 있던 모순, 즉 계급 갈등과 인종 차별,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는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모순들은 억압됐고 표면 아래서 계속 곪아가고 있었다. 신자유주의의 대대적 공세를 받아 모순은 쌓이고 쌓였다. 헬러 교수는 "이같은 관점에서 보면 베트남전 기간 동안의 사회적 동요는 오늘날 미국 사회의 위기를 사전에 경고한 신호로 인식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60년대는 상대적으로 노동계급이 부유한 시기였다. 반면 오늘날 미국 노동자들이 겪는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차별 등은 당시보다 더 크다. 헬러 교수는 계급투쟁이나 사회적 격변 등 대규모 갈등이 터질 가능성이 50여년 전보다 훨씬 커졌다고 본다.

하지만 미국의 집권층은 해외의 전쟁을 통해 내부에 쌓인 각종 적폐를 외면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전 세계 모든 나라를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조달러 단위의 국방예산을 쓰고 있다. 그럼에도 핵무기를 포함해 완전히 새로운 수준의 무기경쟁을 펼칠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미국이 공세적 군국주의를 자발적으로 버릴 것이라는 견해가 있긴 하다. 이에 대해 헬러 교수는 "지나치게 순진한 의견"이라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군산복합체의 영향력 확대를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고 공언한 3명의 장군들이 포진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군사 모험주의적 발언과 총기, 폭력이라는 키워드는 미국 사회와 문화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상징이다. 미국 내 무장 경비대원과 파시스트 그룹이 빠르게 늘고 있다. 트럼프 임기 동안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심각한 위협요소다. 미국 역사를 보면 군국주의와 군사적 모험주의는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해외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반복적으로 사용됐다. 헬러 교수는 "이제 다시 한 번 미국의 정치 사회 엘리트들이 현 난국을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동원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고 경고했다.

군국주의는 내부의 동요에 대한 대응수단만이 아니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의 경제적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부상이 한몫하고 있다. 이런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국은 '호전적 제국주의'라는 글로벌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기타 접경국, 즉 러시아와 이라크 시리아 이란 아프가니스탄 베네수엘라 중국 한반도, 아프리카 대륙 전체에서 미국은 막강한 군사력을 배치하고 있다. 과거의 경제적 우월감이 쇠퇴하자 군사력, 정치력으로 이를 만회하려 하기 때문이다.

핼러 교수는 "해외에서 군사적 외교정책을 추구하는 건 미국 내 만연한 군국주의화와 폭력성에 기름을 끼얹는 처사"라며 "미국은 경찰의 무장군대화, 감옥·투옥의 산업화, 정부의 감시 검열 기능 강화 등을 통해 완전한 독재 경찰국가로 가는 전환기를 밟고 있다"고 비판했다.

다행인 점도 있다. 2016년 대선에서 해외에서의 각종 전쟁을 옹호하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유권자로부터 외면 당한 것은 그런 전략 자체가 실패임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는 게 헬러 교수의 분석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를 놓고 미국 사회가 사분오열 찢어지고 있다. 그 자체로 계급갈등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 미국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은 베트남전 때보다 더욱 분열하고 있다.

헬러 교수는 "미국은 사회주의 혁명기운이 절대 침투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심장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미국은 최근 경제와 관련해 여러가지 긍정적 신호를 보이고 있지만, 자본주의 위기의 진앙지이자 최대 취약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미국 내 혁명 가능성도 배제 못해" 로 이어짐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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