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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미국의 이중잣대 … "미국도 한때는 산업기술 탈취국"

19세기 미국-21세기 중국의 무역정책은 '판박이'

등록 : 2018-05-15 10:48:00

이달 초 미국의 고위급 무역협상단이 중국을 찾았지만 그다지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측의 일방적인 요구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예상된 결과였다. 미국은 중국의 산업정책과 지적재산권 규정을 완전 뜯어고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중국의 대미 수출품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관세부과 방침엔 이의를 제기하지 말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중국과 관련한 무역마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물론 마지막도 아닐 것이다.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교수인 대니 로드릭은 온라인 기고전문 매체 '프로젝트 신디케이트' 글에서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글로벌 무역질서는 전 세계 무역관련 정책이 하나로 수렴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초해왔다. 특히 중국이 경제를 다루는 방식에서 보다 '서구화' 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며 "하지만 중국은 특유의 경제체제를 운용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미국 등과 지속적으로 마찰을 빚어왔다"고 지적했다.

로드릭 교수는 "중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미국의 압력에 저항하는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봤다. 미국은 수출업체들의 로비를 받아 자국 중심의 틀을 제시하며 일방적으로 상대국을 바꾸려는 경향이 있다는 것. 하지만 중국이 글로벌 경제국으로 큰 성공을 거둔 것은 경제적 자유화 못지않게 중국 특유의 산업정책 덕분이다. 선택적 보호주의와 신용 보조금, 국영 기업들, 자국내 콘텐츠 규정, 기술이전 요구 등 모든 요소가 중국을 세계의 공장으로 만드는 데 일조했다. 중국의 현재 전략, 즉 '메이드인차이나 2025' 정책은 그같은 성공사례를 통해 선진경제국 지위로 올라서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로드릭 교수는 "중국의 무역정책 상당수가 WTO 규정을 어기고 있다는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중국이 '무역 속임수'(trade cheat)를 쓰고 있다고 조롱하는 사람들은 이중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그런 말은 한 사람들 대부분이 글로벌 무역의 장점을 홍보하는 모델로 중국을 찬양하는데 주저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의 전략은 간단하다. 창문을 열되 방어막을 치는 것이다. 신선한 공기, 즉 외국인 투자와 기술을 받아들이되 유해한 요소들, 즉 널뛰는 자본 유출입, 경제생태계를 위협하는 수입품 등은 철저히 거르겠다는 의미다.

로드릭 교수는 "합리적인 국제무역 체제를 만들려면 경제·사회적 모델을 스스로 디자인하려는 나라들의 정책 운용여지를 제한하는 것이 실현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경제발전의 정도, 가치, 역사적 궤도 등은 나라마다 다양하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특정모델에 끼워맞추려 하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편협한 중상주의로, 다른 이해관계자보다 글로벌 대기업의 이해관계를 최우선으로 여기고 글로벌 무역을 전체적으로 개선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다"며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체제의 기본원칙, 즉 '당신이 당하고 싶지 않은 일을 다른이에게 행해선 안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중국의 그같은 행태는, 선진국들이 보다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기 위해 과거에 하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로드릭 교수는 "미국이 중국에 쏟아내는 불만 중 하나는, 선진기술을 입수하기 위해 중국이 체계적으로 지적재산권을 탈취하고 있다는 주장"이라며 "하지만 19세기 미국은 당대의 선진기술강국이었던 영국의 기술을 훔치곤 했던 나라였다"고 지적했다.

미국 뉴잉글랜드 지역의 초기 직물공장은 방적기와 관련한 선진기술이 절실했다. 따라서 영국의 설계도를 훔치고 숙련된 영국인 장인들을 끌어오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미국은 특허법을 갖고 있었지만, 오직 미국 시민만 보호하는 법이었다. 미국 기업의 역사에 관한 저서를 십수권 출판한 변호사이자 전직 금융인인 찰스 모리스는 이를 가리켜 "미국 역시 해적이었다"고 지적했다.

모리스는 미국의 외교전문 매체인 '포린폴리시' 2012년 12월 6일자 기고에서 1812년 벌어진 사건을 제시했다. 1812년 여름 미국의 사업가인 프랜시스 캐벗 로웰과 그 가족을 실은 배가 잉글랜드를 떠나 미국으로 향했다. 항해 도중 영국 군함이 로웰이 탄 배를 정지시킨 뒤 캐나다의 영국 해군기지가 있는 핼리팩스에 데려갔다. 영국군은 며칠간 승객과 승무원을 붙잡아뒀다. 특히 로웰의 소지품은 강도 높은 수색을 당했다. 그가 방적기계 도면을 훔쳤을 것이라는 혐의 때문이었다. 이는 영국에서 중범죄에 해당했다. 로웰은 그같은 위험을 무릅쓰고 도면을 훔쳤다. 하지만 실제 도면을 가져간 게 아니라 기억에 담아두는 방식을 썼기 때문에 체포를 면했다. 지금으로 말하면 그는 '산업스파이'였다.

당시 영국에선 외국인에게 면직공장을 공개하는 일이 드물었다. 하지만 로웰은 명망 높은 보스턴 상인으로 많은 양의 영국제 의류를 구매하던 사람이었다. 영국측 거래상과도 깊은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는 면직공장을 둘러보면서 방적기를 구동시키는 전동장치와 베틀 속도 등을 민첩하게 머릿속에 담았다. 하지만 로웰이 훔친 방적기 도면은 기억에 의존한 탓인지 대략적으로만 비슷했다. 다행히 폴 무디라는, 천재 기술공 덕분에 로웰의 대략적인 기억만으로 방적기를 만들 수 있었다.

오늘날 떠오르는 강대국은 중국이다. 급성장하는 신출내기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패권국은 미국이다. 모리스는 "중국에게 있어 미국은 2세기 전 미국에게 있어 영국과 마찬가지"라며 "미 해군은 중국 주변의 해안을 정탐한다. 또 대만에 군사적 지원을 한다. 2세기 전 영국이 미국의 분리독립주의자들을 도왔던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비슷한 점은 또 있다. 오늘날 중국인은 19세기 미국인처럼 결의에 차 있다. 1등 국가를 경제적으로 따라잡겠다는 야심이다. 당시 미국인처럼 요즘 중국인도 될 수 있는 한 많은 양의 선진기술을 확보하려 한다.

19세기 중반 미국은 영국의 '셰필드 철강'이라는 최고의 공산품을 베끼려고 안달했다. 하지만 미국이 막대한 돈으로 매수한 셰필드 철강 장인들은 제품을 복제하는 데 실패했다. 이유는 영국인들도 몰랐다. 나중에야 용광로를 만드는 재료를 셰필드 지방 진흙으로 써야 한다는 점이 밝혀졌다.

오늘날 중국의 산업스파이 행위는 사실상 미국의 선진기술 기업 대부분을 겨냥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애플과 보잉, 다우케미컬, 듀퐁, 포드, 노스럽 그러먼, 제너럴모터스 등 많은 기업들은 중국의 첩보원 등에 대한 만반의 감시체제를 갖추고 있다.

1812년으로 돌아가면, 완성된 면직물은 영국의 제1 수출품이었다. 전체 무역매출 중 절반을 차지했다. 반세기 동안 대량생산 기술을 연마한 결과였다. GDP 비중으로 따지면 영국의 당시 면직산업은 자동차 산업이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3배였다. 그만큼 중요한 산업이었다. 고속 면직생산법을 독점하려는 건 오늘날 미국이 소프트웨어와 마이크로프로세서 부문에서 독점을 유지하려는 것과 유사했다. 영국 의회는 산업비밀을 훔치는 것에 강력한 제재법을 두고 있었다. 심지어 면직 관련 숙련노동자나 기술자가 이민을 가는 것도 금지했을 정도다.

모리스는 "하지만 미국은 영국의 산업재산권 보호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며 "모국인 영국의 압제적인 경제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독립운동을 벌였다. 미국인들은 영국의 기술적 장벽이 자국을 원자재 공급국, 또는 저사양 제조품을 위한 포획된 시장으로 만들려는 제국적 음모라고 간주했다"고 설명했다.

1790년 제정된 미국의 첫 번째 특허관련 법은 당초 '어느 누구나'(any person) 특허를 등록해 보호받을 수 있다고 돼 있었지만, 1793년 '오직 미국인만' 미국 특허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수정했다.

중국의 현대 무역과 특허 체제도 외국인에 대해 편향적이다. 고부가가치 컴퓨터 칩은 소스코드에 대한 검사를 허용하지 않으면 중국에 수출할 수 없다. 서구 기업들은 중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주요 기술을 공유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곤 한다. 독일의 한 기업은 자기부상 열차 관련 기술을 중국 거래기업에게 넘겼다가 이를 바탕으로 성장한 중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패배해 물러나기도 했다. 제너럴일렉트릭은 고부가가치에 군사적으로 민감한 항공전자공학 기술을 중국측에 넘기기도 했다.

하지만 모리스는 "19세기 미국인들이 오늘날 중국인보다 더 뻔뻔했다"고 주장한다. 기업가들은 공개적으로 광고를 내 영국의 숙련기술자들을 거액을 주고 이민시켰다. 알렉산더 해밀턴(1755~1804) 재무장관의 보좌관을 했던 텐치 콕스는 산업기밀을 넘기는 사람들에게 거액의 보조금을 주는 체제를 만들었고, 기계도면을 훔치기 위해 스파이들을 영국에 파견하기도 했다. 영국의 숙련공들은 미국이 주는 막대한 보조금을 달갑게 받았지만, 그들 중 대부분은 기계를 어떻게 만드는지, 면직 공장을 어떻게 운영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돌파구는 새뮤얼 슬레이터에서 나왔다. 그는 어린 농장 소년으로, 영국 내 방적기 개발자 중 한 명인 제데이아 스트루트 밑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다. 스트루트는 슬레이터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그를 새로운 공장 건설과 운영의 보조역으로 삼았다. 슬레이터는 고용계약서에서 '스트루트가 가진 산업비밀을 충실하게 지켜주겠다'고 서약했다.

하지만 영국에서 자신의 미래를 걱정하던 슬레이터는 21세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는 방적기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었다. 가명으로 이민하면서 미국 프로비던스시의 유명 상인인 모지즈 브라운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가 낸 광고를 보고서였다. 브라운은 영국 방적기를 어설프게 모방한 기계로 심각한 손실을 보던 사업가였다. 슬레이터에게 완전히 반한 브라운은 그를 공장 파트너로 삼아 재정을 댔다. 이후 15년 동안 슬레이터와 브라운, 이들의 사업파트너들은 뉴잉글랜드를 넘어 북동부 지역의 면직사업을 지배하는 강력한 제국을 설립했다. 앤드루 잭슨 대통령은 슬레이터를 '미국 산업혁명의 아버지'로 칭송했다. 반면 영국인들은 그를 '반역자 슬레이터'로 부르며 분개했다.

모리스는 "슬레이터나 로웰이 있었기에 미국의 대량생산 체제는 급격히 발전했고, 이는 19세기 미국의 성장잠재력을 일깨운 핵심 요소였다"며 "이는 현재 미국의 하이테크 기술이 중국에게 주는 의미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나라간 경쟁의 게임에서 윤리를 들먹여서는 해결될 수 없다"며 "로웰이 오늘날 미국측 컨설턴트로 환생한다면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에게 '아무리 친근해 보여도 중국인들이 공장에 발을 들이지 못하게 하라'고 조언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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