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도·일본·한국, 이란 석유수출 3/4 차지

이미 국제유가 상승, 간접비용 추가로 피해

2012년부터 2015년까지 4년 내내 이란과 거래하는 아시아 기업들은 발목이 묶였다. 미국이 이들 기업에게 이란과 거래하지 말 것을,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지 말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를 어길 경우 미국의 제재를 받을 터였다.

2015년 이란핵합의가 타결돼 제재가 해제됐지만 3년이 채 못돼 아시아 기업들에게 다시 그같은 공포가 되살아나고 있다. 이번에도 아시아 각국은 미국 주도의 제재에 피해를 보게 될 것인가. 미국의 위협에 굴복하기보다 외교적 힘을 동원할 가능성은 없을까.

에너지시장 조사업체 '반다 인사이트' 창립자인 반다나 하리는 23일 '닛케이아시안리뷰' 기고에서 "국제 원자력 감시기구들은 '이란이 핵프로그램에 대한 규정을 완전히 준수하고 있다'고 지속적으로 확인했지만 미국은 기어코 이란핵합의를 파기했다"며 "그같은 사실이 대미 협상카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을 제외한 나머지 합의 서명국은 영국과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 5개국으로, 이들이 나서서 이란핵합의를 지켜야 한다는 것.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방어조항'(blocking statute)을 꺼내들어 유럽 기업들이 미국의 이란 제재를 따르지 못하도록 할 방침이다. 물론 그같은 방침이 얼마나 효과적일지엔 의문이 많다. 하리는 "미국이 주도한 이전의 경제제재엔 전 세계 각국이 이란의 핵개발을 막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참했다"며 "하지만 이번엔 '외톨이' 신세라는 점을 미국은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시아의 주요 석유수입국은 중국과 인도 일본 한국이다. 4개국은 이란산 원유 수출의 3/4를 차지하는 고객이다. 현재 하루 220만배럴을 수입한다. 이란에 대한 제재가 해제된 이후 50만배럴이 늘어났다. 4개국은 향후 미국의 새로운 이란 제재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지 말라는 강한 압박에 시달릴 것이다.

아시아 국가들은 이미 피해를 보고 있다. 미국이 이란핵합의를 파기하면서 국제유가가 상승하고 있다. 2014년 11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중이다. 일본과 인도의 정유기업들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엔화와 루피화 가치가 미 달러 대비 하락하면서 원유 구매력이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또 이란의 석유와 천연가스 생산시설에 대한 국제적인 투자를 막기 위해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이후 서서히 기지개를 펴던 산업 부문으로, 중국과 인도, 유럽 기업들이 주로 참여해왔다.

이란과 직간접적으로 거래하는 제3국 기업들을 처벌하는 미국의 새로운 세컨더리 제재는 오는 11월 4일 발효될 전망이다. 따라서 향후 6개월 동안 기존의 사업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제재가 시작되면 이를 어긴 제3국 기업들은 미국 금융시스템에서 퇴출되고 미국 기업과 사업을 할 수 없게 된다. 다국적 기업들이 감수하기엔 너무 큰 위험요소다.

이란 원유를 구매하는 유럽 기업들, 이란 석유와 천연가스 부문에 투자하는 금융 기관들, 거대 해운사들, 무역보험사들은 이미 이란과의 사업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미국의 단독 행동에 정면 맞서고 있다.

하리는 "물론 이는 아시아 국가들이 선뜻 선택할 수 있는 카드는 아닐 것"이라며 "유럽연합처럼 공동블록이 아닌 탓이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란에 대한 예전 제재에서 미국의 동맹인 한국과 일본은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이라는 요구에 순응한 반면, 중국과 인도는 상대적으로 반항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집요한 강압에 중국과 인도 역시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여야 했다.

미국의 이란 제재 기간 한국과 일본의 이란산 원유 수입량은 약 40% 줄었다. 같은 기간 중국과 인도의 수입량은 최고 22%까지 줄어든 바 있다. 중국은 제재 4년 동안 이란 원유 수입량을 줄였다 늘렸다 했다. 중국 기업들이 미국의 제재 리스트에 특정되지 않았다는 상황을 활용했기 때문이다.

아시아 기업들은 이란과 거래할 때 상대국 통화로 결제하거나 물물교환을 늘리면서 미국의 금융시스템을 우회한 바 있다. 유럽의 선박보험 컨설팅 회사인 'P&I클럽'이 제재에 따라 철수하면서 아시아 각국 정부는 이란과의 원유 거래를 직접 보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이란으로부터 디스카운드를 얻거나 더 좋은 부대조건으로 거래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시아 기업들에겐 보통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고, 이란에게도 경제적으로 수지가 맞지 않았다.

이제 그같은 고통이 아시아 기업들에게 다시 닥치고 있다.

지급결제와 선박보험과 관련해 예전의 우회법을 쓴다면 과거보다 준비기간은 짧아질 수 있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가 풀린 이후 유로화로 원유를 거래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 은행들이 미국의 압력으로 이란과의 거래를 중단한다면, 이란의 유로화 결제도 불가능해진다. 아시아 기업들은 각자의 통화로 거래하거나 물물거래를 하는 수밖에 없다.

아시아 대국들이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줄이라는 미국의 요구에 저항하는 강대강 외교를 채택할 가능성이 있을까. 중국은 2015년 이란핵합의 서명국이었다. 미국이 합의를 파기한 뒤에도 중국은 이를 유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인도는 서명국이 아니었지만 지난 2월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핵합의를 존중하겠다고 표명한 바 있다. 하리는 "이제는 말한 바를 행동으로 옮겨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미국이 이란 문제를 놓고 아시아 각국과의 양자대화를 통해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하리는 "아시아 각국은 이란산 원유 수입량을 줄이라는 요구를 반대해야 한다"며 "미국이 합의를 깨는 바람에 국제유가의 상승, 해상보험, 지급결제 등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정유업자들의 추가비용 등이 생길 것이라는 점을 거론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럽과 달리 아시아가 단합해 미국의 요구에 맞설 것이라 기대하긴 힘들다. 한국과 일본은 미국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때문에 중국과 인도에 쏠리는 눈이 많다. 보다 당당한 입장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유럽과 힘을 합쳐 제재가 아닌, 외교적 경로로 되돌아올 것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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