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환 지음 / 사계절 / 1만2000원

1987년 7월 9일 오전 연세대 백양로에서 열린 이한열 열사 영결식. 수십만 시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늦봄 문익환 목사가 단상에 올라섰다. 목이 메는 듯 잠깐 침묵을 지키던 문 목사는 바로 절규하듯 열사들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전태일 열사여…박종철 열사여, 이한열 열사여…"

문 목사의 목놓아 부르는 26명 열사의 이름들은 비수가 되어 시민들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지난해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1987'의 대미를 장식한 장면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그때 들었던 문 목사의 목소리는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귓전에 쟁쟁하다.

남북정상회담과 뒤이은 북미정상회담, 그리고 트럼프의 회담 취소 선언으로 한반도 정세가 요동치면서 고 문익환 목사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1989년 방북해 김일성 주석과 '남과 북이 자주와 평화, 민족대단결의 3대원칙에 기초해 통일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4.2남북공동성명을 만든 이가 바로 문 목사이기 때문이다. 지난 4월 27일의 '판문점선언'도 따지고 보면 이 원칙에서 한걸음도 비껴나지 않았다.

오는 6월 1일은 늦봄 문익환 목사가 탄생한지 100주년 되는 날이다. 이날을 기념해 도서출판 사계절은 그의 시모음집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를 출간했다. 그동안 출판된 5권의 시집과 산문이나 잡지에 발표한 시들 가운데 70편을 가려 뽑았다.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라는 시집 제목은 '손바닥 믿음'이라는 시의 한구절이다.

이게 누구 손이지/ 어두움 속에서 더듬더듬/ 손이 손을 잡는다/ 잡히는 손이 잡은 손을 믿는다/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 인정이 오가며/ 마음이 마음을 믿는다/ 깜깜하던 마음들에 이슬 맺히며/ 내일이 밝아온다. ('손바닥 믿음' 전문)

문 목사의 시는 아름답다. 순수한 우리말이 대부분이다. 그 시절 흔히 보던 운동권 시같은 선전선동의 생경함이 전혀 묻어나지 않는다. 1968년부터 신구교 공동 구약 번역 책임위원으로 있으면서 성서를 쉽고 아름다운 우리말로 번역한 경험들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시가 40%나 되는 구약을 번역하면서 문 목사는 자신도 모르게 시인이 됐던 모양이다.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에는 낯익은 이름이 많이 나온다. 문 목사가 평생 빚으로 생각했던 민주화운동의 동료 후배들이 주인공들이다. '동주야'의 문 목사의 어린시절 친구였던 윤동주를, '근태가 살던 방이란다'는 민주화운동의 대부였던 김근태 전 국회의원이 치안본부에서 고문을 받고 수감됐던 서울구치소의 방을 보며 쓴 시다.

무엇보다 문 목사의 통일시들은 절절한 바람이 느껴진다.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큰소리치는 일이라고/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잠꼬대 아닌 잠꼬대' 부분)

서울을 떠난 기차가 원산 함흥 청진으로 굽이굽이 돌 적마다/ 죽었던 함경도 사투리들 못물 터지듯/…/ 황주에서 꿀맛같은 홍옥 사먹고/ 평양에 가서 냉면 두어 그릇 사 먹고/신의주 가서 압록강 물에 참외를 씻어 먹는 맛 그게 자유란다.('자유' 부분)

트럼프의 변덕으로 다시 판이 흔들리고 있지만 '서울역에서 평양가는 열차표 내어놓으라'고 하는 일이 마냥 잠꼬대만은 아닐 가능성은 여전하다. 서울역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으로 가 냉면 한그릇 먹고 돌아오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날이 오면 문익환 시집 '두 손바닥은 따뜻하다'도 챙겨갈 일이다.

덤으로 정보 하나. 문익환 목사의 가택 통일의 집은 6월 1일 박물관으로 개관한다.

남봉우 기자 baw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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