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룩 해링턴 지음 / 김영선 옮김 / 동녘 / 1만8000원

작년 말 발표된 '세계 불평등 보고서'에 따르면 상위 0.1%의 슈퍼 리치가 하위 50%와 맞먹는 부를 가지고 있다. 정부나 언론은 불평등 문제 해결을 위해 주로 부자와 과세제도, 공공정책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이 책은 그 뒤에 숨어 있는 이들을 끄집어냈다. 이름하여 자산관리사. 현재 불평등 이슈에 있어서 '소득 불평등'보다 '재산 불평등'이 더 중요하다고 본 저자는 우리 사회가 제도, 정치, 자본 흐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산관리사라는 요소를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산관리사가 하는 대부분의 업무는 '윤리적으로 애매한 영역', 공식적으로는 합법이지만 사회적으로는 위법한 일의 영역에서 일어난다. 이들은 고객이 조세를 회피할 뿐만 아니라 채무 상환을 피하도록 돕고 합법적 권한을 가진 가족 일원의 상속 지분을 배제하기 위해 신탁, 역외 기업 등 여러 수단을 활용한다. 국제법 체제는 사람과 자본이 세계적으로 자유로이 이동하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고 국가간 협력도 부족해 결과적으로 역외 금융 중심지가 번창하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의 조사에 따르면 역외에 보유된 재산액은 2008년 이래 25% 증가했다. 자산관리사의 고객 수, 즉 부자는 줄었지만 관리 자산액은 크게 증가했다. 자산관리사의 노력으로 초고액 순자산 보유자, 즉 슈퍼리치는 번창하고 있다는 얘기다.

투자자나 금융전문가들이 실제로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왔던 저자 브룩 해링턴 코펜하겐경영대학원 교수는 자산관리사들의 세계와 그들의 활동을 연구하기 위해 직접 2년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자산관리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18개국의 자산관리사들과 65차례 인터뷰를 진행하며 8년에 걸쳐 자산관리사를 걸쳐 연구해 이 책을 냈다.

이 책은 투명인간이나 다름없던 사람들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치며 독자가 자산관리사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부자들이 정당한 몫의 세금을 내고 법규에 따르도록 하고 싶다면 부유한 개인이 아닌 그들에게 봉사하는 대리인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가 인터뷰한 자산관리사 중 한명인 폴은 국제적인 기업을 연금 계획과 급여 지불 계획을 함께 구상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영감을 받은 저자는 정책 입안자들이 자산관리사가 보유한 높은 수준의 법적·금융적 전문성이 국가에 유리한 방향으로 사용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이스라엘에서 자산관리 전문가를 통해 탈세와 불법행위를 단속한 성공 사례를 제시하면서 말이다.

박소원 기자 hope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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