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건 지음 / 사계절 / 2만6000원

1987년은 한국 현대사의 특별한 시기다. 그해 대한민국은 독재체제에서 민주주의 체제로 바뀌었다. 헌법 이론으로 말하면 명목적·장식적 헌법에서 규범적·민주적 헌법으로의 대전환을 이뤘다. 30년이 지난 현재 '87년 민주헌법 체제'는 대통령중심제를 다른 형태로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서부터 기본권을 보다 확대·보장하고 경제민주화를 진척시켜야 하며 토지공개념을 헌법에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 등 각계각층의 요구가 넘치고 있다.

1970~80년대 유신과 5공화국 시절, 사회 비판의 한 도구로써 헌법을 연구하기 시작한 양 건 전 감사원장은 자신의 연구 50년을 정리하며 이 책을 펴냈다. 그가 처음 공부를 시작했을 무렵 헌법이 지닌 법규범으로서의 규범력은 미약했다. 이때의 헌법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키고 누릴 수 있는 규칙이 아니라 단지 그러해야 한다는 원리의 선언에 그쳤다. 그러나 1987년 이후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헌법의 힘으로 영화검열이 사라지고(1996년), 공무원시험에서 제대군인을 우대하는 여성차별이 금지(1999년)되었으며 말 많던 간통죄(2015년)가 폐지됐다. 그뿐 아니라 동성동본 금혼제(1997년)와 호주제(2005년)가 폐지됐고 현직 대통령이 탄핵(2017년)됐다.

이 책은 '시민혁명-헌정 수립-민주주의로의 이행'으로 이어지는 근대 세계사를 추적하고, 헌법이 반영 또는 극복하려 했던 현실을 돌아본다. 이 밖에도 저자는 최근 한국 사회에서 불거졌던 건국절, 집회시위 허가제, 통치행위의 개념, 헌법기관의 지위, 권력 구조 등 다양한 문제를 현행 헌법의 관점에서 비교ㆍ분석한다. 저자는 한때 헌법은 구체적인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선언에 불과하다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그러나 사회 현실과 법의 현실 모두 제자리를 찾아 빠르게 움직였다. 저자는 "권력자가 아닌 일반 시민의 것이 된 헌법은 이제 펄펄 살아 있는 법이 되었다"고 선언한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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