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협 여성민우회 사무처장

나는 성차별과 성폭력에 반대한다. 이 당연한 말의 배경에 내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국회의원인지 여성아이돌인지, 학자인지 노동자인지, 돈이 있는지 없는지, 성차별과 성폭력을 어떻게 경험했는지, 당시 내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살필 이유가 없다. 부정의에 반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할 인권에 관한 당연한 정의이기 때문이다.

일상 '사소한' 권리주장이 메갈인가

하지만 2018년 우리 사회는 누가 이 말을 하느냐에 따라 지지받기도 하고 비난받기도 한다. '82년생, 김지영'이란 책을 읽는 것이 남자, 나이많은, 권력자의 경우와 여자, 나이어린, 여성아이돌의 경우가 극단적인 지지와 비난으로 나뉘었다.

성폭력에 침묵하지 않겠다는 남성연예인들의 목소리는 박수 받지만 침묵하지 않고 지지한 여성연예인에게는 '사형'을 청원한다는 참담한 일까지 벌어진다. 성차별을 의심하고 부정하며 성폭력 피해의 목소리가 다른 의도라고 믿는 일부 남성집단의 일관됨이 만들어낸 일들이다.

그 어떤 사회적 정의에도 따라붙지 않는 '논란'이라는 수식어가 '페미니즘' 기사에 붙는 이유는, 성차별과 성폭력의 진실이 자신의 기득권을 위협하고 있다고 느끼는 이들이 페미니즘을 허용할 수 없기 때문에 만들어낸 허상이다. 허상을 실체화하기 위해 끊임없이 남성혐오세력을 소환하고 페미니스트를 '마녀'로 호명하여 스스로의 폭력에 정당성을 획득하려는 일체의 일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얼마전 이와 관련하여 민우회가 1주일간 받았던 181건의 사례 중 일부를 보면 여학생 교복만 사이즈가 작고 불편한 것에 대해 옳지 않다고 말했다는 것을 이유로, '뚱뚱한 년은 다 죽이고 싶다는'는 말에 하지말라는 말을 했다는 이유로, Girls can do anything을 프로필사진에 넣었다는 이유만으로 '메갈'로 몰려 언어폭력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하는 사례가 많았다.

일상의 '사소한' 권리주장, 여성인권에 대한 당연한 말, 일상의 모든 단서들이 '메갈'로 둔갑하여 공격의 빌미가 되어 욕설과 조롱, 비아냥거림으로 돌아왔다.

그 가운데서 페미니즘을 이유로 가장 위협적이고,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이어가는 곳은 게임계다. 이미 '괴롭히고 자르는 것이 이들의 인터넷 놀이문화'가 되었다고 한다.

게임유저들이 사용하는 루리웹 등의 커뮤니티는 여성혐오글이 넘쳐나고 '메갈리스트'라는 블랙리스트가 작성되어 이들의 일할 권리를 집요하게 박탈하고 있다. 게임에 돈을 쓴다는 남성들의 욕망에 충실한 구현에만 집중되어 있다보니 게임내 여성캐릭터의 위치란 수동적이고, 성적대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해야 할 게임세상에서 게임작업자들의 페미니즘이라니, 불편하기 그지없는 일인 것이다. 게임업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이 개인SNS계정에 페미니즘과 관련된 글을 리트윗(RT)한 이유만으로 남성게임유저들은 집단적으로 온라인 괴롭힘을 자행했고 게임사에 해당노동자와 그가 작업한 내용물을 '삭제'할 것을 요구해 수많은 게임여성종사자들을 게임업계에서 내쫓았다.

정당한 개인사상을 침해하는 아집

그런 부당한 집단적 요구에 여성노동자는 일자리를 잃고, 성차별주의자들은 성차별적인 게임세계를 사수하고, 새로운 세대는 게임으로 성차별을 배우고, 게임사는 이를 강화한다.

정당한 개인의 사상이, 성차별주의자들에 의한 집단 괴롭힘과 이에 동조하는 회사의 압력으로 개인의 존엄과 노동권을 침해당한다. 이 선명한 부당함의 서사에도 게임사는 개인을 희생한다.

그리고 게임사와 집단은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실은 해고한 그 여성이 올린 것은 '진짜 페미니즘'이 아니라, 남성혐오세력인 '메갈'이였다고. 그러나 그들이 말하는 '진짜 페미니즘'은 실체적 진실과 조금도 교차하지 않는, 스스로 허용가능한 범위의 좁아터진 아집이다.

멀어지는 간극에서 과연 도태되고 있는 건 누구일까.

최진협 여성민우회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