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일 덜 시키겠다"

주52시간 근무단축 추진

"더 나은 사람이 보이지 않아서 박 시장 찍을 생각입니다. 하지만 솔직히 다시 일 폭풍 맞을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합니다. "

선거를 2일 앞둔 지난 11일 만난 서울시 7급 공무원의 얘기다. 공적으로는 박원순 현 시장의 당선을 지지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박 시장 일욕심의 영향을 직접 받을 수 밖에 없는 서울시 직원들의 심경이 드러난 대목이다.

하지만 박 시장의 3기 서울시가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어 관심이 모인다.

박 시장은 선거 다음날 업무 복귀 후 직원들과 첫 인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제가 비운 사이 서울시를 든든히 지켜주셔서 감사하다. 직원 여러분이 만들어낸 성취 덕분에 압도적 지지를 받게 됐다"며 "앞으로 일 많이 안 시킬테니까 즐겁고 행복하게 즐깁시다, 휴가도 많이 즐기고 신나게 일합시다"라고 말했다.

박 시장의 이같은 인사에 서울시 직원들은 적잖이 놀랐다. 4년 전과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관계자에 따르면 2014년 서울시장 선거를 마치고 돌아온 박 시장이 직원들에게 한 첫 인사는 "저 없는 동안 잘 쉬셨죠?"였다.

이 관계자는 "당시 직원들은 박 시장의 이 인사에 상당히 당황했다"며 "선거 기간에 많이 놀았을테니 이제 일 좀 하자"는 엄포처럼 들렸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업무량 문제만이 아니었다. 박 시장의 당시 발언은 가뜩이나 '공무원 조직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던 박 시장에 대한 직원들의 비호감을 더 자극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이는 시민단체 출신을 중용하는 박 시장 인사 스타일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박 시장 리더십과 내부 단합을 해치는 요인도 됐다.

이번 선거에서도 일부 후보 진영이 '서울시 6층에 시피아(시민단체 출신 마피아)가 있다'라고 공격하는 빌미도 제공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같은 평가를 이식한듯 박 시장은 취임 일성으로 직원들의 노고에 우선 감사를 표한 데 이어 서울시가 '주52시간 근무'에 앞장서겠다고 공표했다.

박 시장은 당선 뒤 첫 간부회의 자리에서 "서울시와 공공기관은 주 52시간 근무에서 제외되지만 일과 삶의 균형이 시대의 화두인 만큼 서울시에서 선도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준비해보라"고 특별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간부회의 참석자에 따르면 박 시장은 이날 자리에서 기존에 임기 시작과 함께 의무적으로 진행했던 부처별 업무 보고도 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금요일에만 실행하던 PC셧다운제(일정 시간이 되면 업무용 PC의 전원을 차단하는 것)도 확대하자고 제안했다.

서울시는 박 시장 지시에 따라 주 52시간 근무를 실질화할 수 있는 계획 마련에 돌입했다. 주52시간 근무에 가장 큰 장애물인 시간외 근무 단축 방안 마련에 본격 착수했다. 서울시는 2017년 기준 평균 초과근무 시간이 중앙부처의 1.8배에 달할만큼 업무량이 과도한 조직에 꼽힌다. 현재 진행 중인 시간외 근무시간 주간 단위 모니터링 등을 더욱 강화하고 불필요한 업무를 찾아내 축소하는 작업에 속도를 낼 예정이다. PC셧다운제는 직원 의견 수렴을 거쳐 현재 금요일만 시행하던 것을 수요일까지 확대하는 쪽으로 검토 중이다.

서울시의 주52시간 근무 도입과 박 시장의 변화 가능성에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다. 서울시 업무와 조직 특성상 주52시간 근무는 형식적으로 실행될 가능성이 크고 성과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 단체장 역할 때문에 용두사미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직원은 "억지로 52시간 맞추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간부와 직원들이 꼼수가 아닌 바뀐 근본적인 일과 삶 균형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제도 운영에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시장과 서울시 변화에 정치권도 주목하고 있다. 박 시장이 지방선거에서 여당 야전사령관 역할을 하는 등 정치적 위상이 달라져서다.

민주당 관계자는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과감하게 믿고 맡기고 본인은 더 큰 비전에 집중하는 등 박 시장 리더십에 변화가 필요하다"며 "이번 변화 여부가 더 큰 정치인으로 갈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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