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아시안리뷰

금융적 나태함으로 1997년 금융위기를 겪었던 아시아 기업과 가계가 부채의 위험성에 대한 교훈을 망각하면서 새로운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닛케이아시안리뷰는 17일 "미국 기준금리가 오르면서 과도한 부채를 진 아시아의 기업들과 가계들이 극도로 긴장하고 있다"며 "위기의 징후들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 세계적으로 기업과 개인의 채무는 연이어 최고치를 경신해왔다. 아시아도 물론이다. 게다가 중국과 한국 일본 등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다른 어느 지역 못지 않게 높다. 국제통화기금(IMF) 등 국제기구들은 연일 경고음을 내고 있다.

인도 정부가 소유한 최대 은행인 스테이트 뱅크 오브 인디아(SBI)는 악성 채무 때문에 1분기 손실액이 11억달러에 달했다. 은행 역사상 최악이다. 중국의 악성채무 비율은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낮지만 중앙정부와 주정부가 통제하는 은행들이 과도한 채무를 진 기업들을 집중 단속하면서 '악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 위기설이 불거진 중국 최대 부동산기업인 '다롄 완다 그룹'이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은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때맞춰 벌어지고 있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면 아시아 전역에 걸쳐 차입비용이 크게 상승한다. 특히 인도네시아에서 중앙은행이 취약한 루피아화를 방어하기 위해 금리를 연이어 올렸다. 말레이시아와 필리핀도 올해 초 금리를 올렸다. 인도 역시 이번달 기준금리를 올리며 추세에 동참했다.

아시아 기업들 전반적으로 금리 상승에 큰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아시아 기업의 고위험 고수익 채권에 투자한 사람들은 현재 6.8%의 수익률을 챙기고 있다. 올해 1월만 해도 5.1%였다. 미국 하이일드 채권과의 수익률 스프레드도 제로수준에서 0.7%로 벌어졌다. 신흥국, 그중에서도 중국과 한국 인도의 기업들은 올해와 내년 채권 만기가 돌아오면 차환(리파이낸싱) 위험이 커질 전망이다.

닛케이는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는 부채 위기의 폭발성에 대한 교훈을 줬어야 했다"며 "하지만 '모든 것이 괜찮다'는 근거없는 자신감이 여전히 팽배한 상황이다. 빚이 점차 쌓이고 있다. 특히 지난해 빚 규모가 급증했다"고 지적했다.

국제금융협회(IIF)에 따르면 2017년말 기준 전 세계 부채는 237조달러에 달한다. 그중 174조달러는 선진국 부채다. 하지만 신흥국, 특히 아시아 국가들은 빚수렁에 빠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IMF와 세계은행, IIF 등 국제기관들이 최근 연달아 아시아에 대해 경고음을 내는 이유다.

중국은 전체 기업부채가 GDP 대비 166%로 상승했다. 일본과 한국의 경우 전체 기업부채 비율은 GDP 대비 100% 정도다. 막대한 빚이 아시아 기업만의 특징은 아니다. IIF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GDP 대비 95%로 급증했다. 그 뒤로 태국(70%), 말레이시아(68%)가 있다. 가계부채는 가계소득과 대비했을 때 더욱 우려스럽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가계 처분가능소득의 159.8% 수준이다.

부채는 자본으로 상쇄된다. 대기업들의 경우 현재 현금 보유량이 일반적으로 높다. 하지만 현금이 많다고 해도 부채를 자유롭게 갚아나갈 수 있느냐는 기업마다 다르다. 총부채가 언제나 문제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외환 대출의 경우 미국 기준금리가 오르게 되면 취약성이 배가된다.

한국 기업들은 아시아 국가 중 외환대출 비중이 가장 높다. GDP 대비 18.3%다. 말레이시아가 18.1%, 태국이 11.4%, 인도네시아가 10.4%, 인도가 9% 정도다. 중국의 경우 7.8% 수준이다.

일부 기업은 이미 금융압박을 받고 있다. 인도의 이동통신사 릴라이언스 커뮤니케이션은 지난해 은행대출과 달러채권을 갚지 못해 파산했다. 경쟁기업이었던 에어셀 역시 올해 2월 자발적 파산을 선언했다. 두 기업 모두 매출과 수익이 급감하면서 파산했다.

닛케이는 "두 기업 모두 경쟁이 극심한 환경에 놓였다는 특징이 있지만, 보다 중요한 건 부채가 많은 기업은 매출과 수익 등 운영상 문제가 생길 때 파산 위험이 급증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아시아에 새로운 위기가 발생할 것이라는 경고가 국제기구는 물론 각국 정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엔 다를 것'이라는 논리도 거세다. 이들은 '1997년 아시아 기업들은 자국 통화로 매출을 올리면서 달러로 금융비용을 조달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달러가 개별 통화에 비해 올랐지만 부채 상환은 고정환율로 이뤄졌기 때문에 심각한 피해를 야기했다는 것.

요즘은 그와는 반대로, 기업들이 달러채무를 멀리하는 것은 물론 단기자금을 융통해 장기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관행을 없애고 있다는 것이다. 각국 정부 역시 외환보유고를 넉넉히 쌓아뒀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들은 '아시아의 부채 규모가 그 자체로 특별히 우려할 만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역사적 수준에서 크게 오를 때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현재는 인플레이션이 급상승할 가능성이 적기 때문에 그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낙관론자들의 입장이다.

하지만 닛케이는 "자기위안에 불과하다"며 "금리가 역사적 수준에 비해 계속 낮을 것이라는 예상으로 기업과 가계, 금융기관, 정부들은 계속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뀌면 그 결과는 파괴적"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매출이 견조할 때 부채 상환은 지속가능하다. 하지만 매출이 감소할 때 부채가 제공했던 '지렛대'(레버리지) 효과는 부정적으로 변한다. 앞서 언급한 인도의 이동통신 업계가 맞닥뜨린 현실이다. 자본이 적은 기업은 부채를 끌어쓰면서 왕성한 활동을 벌일 수 있다. 하지만 매출이 감소하는 상황에서는 채무 상환 비용이 커지면서 자본이 빠르게 사라질 수 있다. 위기가 발생하는 과정이다.

2017년초부터 글로벌 경제활동이 동반 상승했다. 세계 무역의 회복세에 기인했다. 하지만 그같은 장밋빛 시나리오가 앞으로도 이어질지 의문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보호주의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같은 측면에서 아시아는 다른 지역보다 더 취약하다. 미국과의 무역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닛케이는 "만약 무역전쟁이 미국 기준금리 인상과 더불어 진행되면, 과도한 빚을 진 이들의 아우성은 커질 것"이라며 "그런 목소리가 비등하게 되면 아시아의 새로운 위기가 우리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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