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증권거래위원회

"불법 아니나 문제 심각"

지난해 연말 미국 의회를 통과한 대규모 감세안의 온기가 결국 미국 최고경영진들의 혜택으로만 귀결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왔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인 로버트 잭슨은 최근 미국 경제방송 CNBC 인터뷰에서 "기업 최고위층들이 자사주 매입을 발표한 뒤 주가가 오르면 보유주식을 매도해 현금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공화당이 주도한 대규모 감세안이 통과된 이후 기업들은 기록적인 자사주매입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당시 이를 비판하는 측에서는 "1조5000억달러 감세조치가 대주주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것"이라며 "경제 일반에 온기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한 바 있다.

잭슨 위원은 "회사 차원에서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선언한 시점과 경영진이 보유주식을 매도한 시점 간의 상관관계를 보면 증권법 위반 혐의가 짙다"며 "하지만 이를 면제해주는 조항이 있어 제재하지 못한다. 관련조항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민주당 몫의 SEC 위원인 그는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했다. 잭슨 위원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개혁안인 '도드프랭크' 법안이 통과돼 경영진이 자사주를 어떻게 현금화하는지에 대한 정보를 투자자들에게 공개할 수 있도록 했지만 구체적인 규정이 없어 있으나마나 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드프랭크법이 완료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자사주매입을 악용하는 상황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것도 문제"라며 "트럼프 대통령의 감세조치는 자사주매입 규모를 전례없이 폭증하게 만들었다. 느슨한 증권거래법 규정과 기업의 안일한 감시 때문에 기업 최고경영진들이 투자자의 몫으로 자신의 이익을 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장정보기업 '트림태브스'에 따르면 미국 상장기업의 전체 자사주매입 규모는 올 1~3월 1분기 1780억달러였다.

하지만 5월 한달 동안 1713억달러를 기록했다. 6월의 경우 1~10일까지 511억달러에 달했다. 이와 함께 최고경영진 등 기업내부자들이 매도한 자사주 물량은 236억달러였다.

월가 애널리스트들은 올 한해 자사주매입 규모가 8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스위스의 글로벌은행인 UBS는 미국 기업들이 올해 자사주매입과 배당, 인수합병에 쓰는 금액을 모두 합하면 2조50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잭슨 위원이 최근 15개월 385건의 자사주매입 선언을 조사한 결과 평균 기업주가를 2.5% 올렸다. 그중 절반의 경우에서 기업 최고경영진 1명 이상이 자사주매입 선언 직후 보유주식을 매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사주매입 선언 이후 8일 동안 기업 내부자가 보유주식을 매도한 건수는 이전 기간 대비 2배 늘었다. 이 기간 동안 기업 내부자가 하루 평균 매도한 주식가치는 50만달러였다. 자사주매입 선언 직전과 비교하면 5배 늘어난 규모였다.

잭슨 위원은 자사주매입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높이려는 경영진들이 현행법을 위반한 건 아니라고 인정한다. 자사주매입 시 4가지 사항을 준수하면 법적 처벌을 면제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세이프 하버'(safe harbor) 조항으로 불리는 것으로, △장 시작 또는 장 종료 시에는 자사주매입에 들어가지 않는다 △자사주매입에 중개인을 1명만 고용한다 △시장 가격으로 주식을 매수한다 △이전 4주간 일간 평균 거래량의 25% 이내에서 자사주를 매입한다 등이다.

하지만 잭슨 위원은 세이프 하버 조항으로 경영진들이 기업의 내재가치 제고에 관심을 쏟기보다 시장에 만연한 단기거래 차익에 집중하는 성향을 보인다며 관련 규정의 개정을 강조했다.

잭슨 위원은 "그같은 거래가 꼭 불법은 아니지만 문제가 심각한 건 사실"이라며 "경영진들이 중장기 기업가치 창출보다 단기주식거래에 몰두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때문에 그는 기업 이사회가 경영진의 주식매도를 승인하는 한편 주주들에게 경영진이 보유주식을 매도하는 이유 등을 설명토록 하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평한 운동장이 되려면 경영진이 주주의 돈으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주주들이 알아야 한다"며 "경영진이 자사주매입을 통해 자신의 배를 불리는 게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야 주주들이 기업의 중장기 발전을 위해 기꺼이 장기투자를 할 것이고, 결국 이는 미국 경제 전반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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