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정 변호사 여성변호사회 대외협력이사

최근 여성 변호사를 대상으로 한 리더쉽 강연에서 '주요 정당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 후보로 여성이 거의 공천을 받지 못한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하는 질문이 있었다. 이에 대해 강연자로 나섰던 한 선거 전문가는 '우리나라 선거제도는 잘 갖춰져 있는데 아직도 여성 전문가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와 노력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답변했다. 여성이 정치 참여를 기피하거나 여성 후보들이 남성들에 비해 자질이 부족하다는 류의 이 같은 설명은 지난 23년간 단 한 명의 광역지방자치단체장도 배출하지 못한 선거에 대한 빈약한 변명이며, 여성의 참여와 승진율이 저조한 대부분의 분야에서 직접적인 원인으로 언급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자치단체장 선거에 공천할 여성후보가 없었을까

그런데 정말 공천할 여성후보가 그렇게나 없었을까. 만약 그렇다면 그 원인은 무엇일까. 여성의 능력이 부족해서 정치 참여를 꺼리고 공천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것일까. 여성의 참여를 저조하게 하는 환경이 있는 것은 아닐까.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관점에서 아직도 여성 변호사라고 하면 '이혼사건 많이 하시겠네요?'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많은 여성 변호사들이 가사사건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것이 능력있는 여성 변호사들이 가사소송 분야로 많이 진입하기 때문인지, 여성들에게만 특히 잘 맞기 때문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가사소송 외의 분야를 주로 하는 로펌이 채용할 때 야근이 많아서, 출장이 많아서, 의뢰인이 기피한다는 등등 다양한 이유로 여성 변호사를 기피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임신 및 출산의 경우 이외에 보편적으로 여성은 약하기 때문에 특별히 법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도 차별과 편견을 부추긴다. 세계은행의 한 보고서(여성, 비즈니스 그리고 법 2018)에 따르면, 여성 사회진출을 저해하는 직업 환경 요소로서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사회적으로 위험하고 힘든 일로 간주 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는가'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남성과 여성이 동일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가' 등이 포함되어 있다. 여성을 배려한다는 이유로 힘든 일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제도적 환경이 여성 역할을 제한하고 차별을 정당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저조한 원인은 다른 선진국의 경우보다 조금 복잡하다. 근로자의 평균 노동시간은 연 2069시간으로 OECD 국가 중 두번째로 길고, 남녀간 임금격차는 36.7%로 가장 심하다. 여기에 가사노동과 육아는 여성의 몫이라는 가부장적 편견이 더해져 여성의 경력 단절을 부추긴다. 그리고 노동시장의 경직성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은 여성의 재취업 의욕을 꺾고 있다.

여성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서 여성을 배제하면서 승진 차별을 당연시하는 문화도 바꾸고, 남성이 육아휴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여성의 적극적인 정책 참여 없이는 여성의 사회참여와 성평등을 위한 정책도 잘 만들 수 없다.

여성 공직진출 막는 보이지 않는 벽 존재

이와 관련해, 2050년까지 전세계 행정, 입법, 사법, 경찰, 공공서비스 5개 분야의 여성 리더 비율을 50%까지 끌어올릴 것을 목표로 각국의 현황을 분석한 Women in Public의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와 같이 표면적으로 여성의 공직 진출을 막는 차별적 제도가 없는 나라에서도 유리천장은 여전히 존재하고, 이미 진출한 여성 리더들이 실제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렵게 하는 보이지 않는 벽(Glass wall)이 존재한다고 한다. 여성 리더의 수가 성비에 맞게 확충되지 않는 한, 소수의 여성 리더만으로 몰카, 성범죄, 직장 성차별 등 남녀의 시각이 다른 사회문제에 대해 여성의 입장을 정확히 반영하는 정책을 만들기 어렵다는 것이다.

매년 대학 입시와 각종 고시, 취업경쟁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던 그 많던 여성 인재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들 중 일부는 이미 공천 후보 리스트에 있었을 테지만, 여전히 수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다. 이번 선거에서 '여성이 아니면 뽑지 않겠다'는 무효표 운동까지 있었음을 기억하자. 그들을 찾아내고, 무대로 이끌어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도 기성 정치인들의 중요한 임무일 것이다.

신민정 변호사 여성변호사회 대외협력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