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전쟁은 누워서 떡먹기'라며 승리를 장담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무역전쟁에 승자란 없다. 오직 패자뿐'이라고 지적한다.

극동이코노믹리뷰 국제금융 에디터와 싱가포르비즈니스타임스 도쿄 특파원을 역임한 앤서니 롤리는 12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기고에서 "진짜 걱정스러운 것은 '제한된'(limited) 무역전쟁이 가능하다는 그릇된 인식이 있다는 것"이라며 "상대적으로 경제규모가 작아 전 세계 무역시스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두 나라가 서로 관세를 부과하며 다툼을 벌일 경우에는 맞는 이야기"라고 지적했다.

롤리는 "세계 1, 2위 경제대국이 무역전쟁을 벌인다면, 상황은 완전 달라진다"며 "거기엔 무역 통계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이유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무역이란 전 세계 경제 활동을 창출하고 유지하는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세계를 움직이는 건 돈이다. 그리고 돈은 무역에 중대한 영향을 끼친다. 교환의 매개체라는 이유뿐 아니라 금융시장이 실물의 수요공급에 행사하는 '부의 효과'(wealth effect)가 있기 때문이다.

몇몇 수치를 보면 알 수 있다. 전 세계 연간 무역규모는 상품무역 16조달러, 서비스무역 4조달러를 포함해 모두 20조달러 정도다. 전 세계 모든 나라의 국내총생산(GDP) 총액이 80조달러라는 점을 고려하면 매우 큰 규모다. 하지만 전 세계 금융자산 총가치는 이를 크게 압도한다. 무려 300조달러 가까운 규모다.

주식과 채권, 기타 금융증서 등으로 구성된 금융자산은 구매력에 영향을 미친다. 금융자산 가격이 오르면 구매력을 높인다. 바로 부의 효과다. 부의 효과로 구매력이 높아지면 무역액과 무역규모가 커진다. 역관계도 성립한다. 금융자산의 가격이 하락하면 구매력이 낮아져 결국 무역이 줄어든다. '부의 역효과'다.

롤리는 "무역과 경제활동 급감을 촉발할 수 있는 부의 역효과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전 세계 금융자산 가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에 비해 약 50%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전 세계 GDP와 무역 성장세는 황소걸음이었다.

이는 실물 경제가 아닌 '종이자산' 가치가 급격히 부풀어올랐다는 의미다. 특히 주식(70조달러), 국채 및 회사채(90조달러) 명목가치가 크게 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촉발하기 전부터 국제통화기금 등 국제기관들은 과도하게 부풀려진 종이자산의 가치가 조정국면을 맞아 급격히 쪼그라들 우려가 있다고 경고해왔다.

말로만 으르릉대던 수준에서 관세폭탄을 주고받는 실제 무역전쟁으로 돌입하면 자본투자뿐 아니라 기업의 매출과 이익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금융자산의 조정국면은 매우 가혹한 시기가 될 것이다. 단 한 발의 '총성'으로 투자 심리가 위축되고 이후 집단 패닉이 닥쳐 결국 금융시장이 붕괴할 수 있다.

무역은 모멘텀을 잃고 급감할 것이다. 롤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때서야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전의 조치들을 반대로 되돌리려 하겠지만, 금융자산 가치와 투자심리는 이미 바닥에 떨어진 상황일 것"이라며 "천하의 트럼프라고 해도 '백약이 무효인'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전 세계 부채 수준이 연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는 상황이다. 특히 기업부채의 폭발력에 대한 우려가 크다. 롤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어찌할 바 몰라 연방준비제도(연준)에 통화긴축 대신 완화책을 쓰라고 지시한다 해도 무역 급감으로 기업 수익이 곤두박질 치는 상황에서 이미 막대한 부채로 인한 고통은 커질 것"이라며 "이같은 시나리오가 세상의 종말을 알리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향후 상황을 정확히 보여주는 내용"이라고 주장했다.

조지 소로스와 함께 퀀텀펀드를 공동창립한 베테랑 금융전문가 짐 로저스는 최근 "75년 평생 최악의 금융위기가 닥치고 있다"며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빨리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된 저금리 정책과 양적완화 정책 때문에 금융시장에 유례없는 거품이 형성됐다. 이 거품은 전 세계 실물경제를 전례없는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롤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무역전쟁을 촉발하면서, 그동안 위태롭게 유지되던 금융거품이 전 세계를 날려버릴 '대량살상무기'(WMD)로 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트럼프발 폭발 이후 전 세계 무역시스템은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 롤리는 "예측하기 어렵다"며 "트럼프가 대표하는 정치적 포퓰리즘에 대한 대대적인 반항이 벌어진다면, 무역시스템을 떠받치던 거대하고 복잡한 공급망이 고통스런 과정을 통해 복원될 수 있다. 하지만 정반대로 자급자족 경제로의 후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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