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오후 가꿈주택부터 옥탑방까지 박원순 동행

현장 4곳·주민간담회 2회·늦은밤 보좌진과 회의

"쇼인지 일인지 나를 하루 종일 따라다녀 보면 알게 될 겁니다."

지난 3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박 시장이 옥탑방에 일하러 갔다는 걸 모르는 시민은 없다. 문제는 과연 한달살이로 강남북 격차 해소 방안을 찾을 수 있느냐다. 폭염은 박 시장이 강북에서 무엇을 하는지 보다 옥탑방 자체를 화제로 만들었다. 하지만 옥탑방은 박 시장이 잠을 자는 곳일 뿐, 중요한 것은 옥탑방 밖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였다.

박원순 시장이 성북구 장위동 가꿈주택에서 주민들과 수박을 먹으며 주차난 해소 대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이제형


◆마을극장 만들어 보세요 = 박 시장이 옥탑방에 입주한지 20일째 되는 지난 10일, 박 시장의 오후 일정을 동행했다. 오후 3시 시청에서 나와 박 시장이 찾은 첫번째 현장은 성북구 장위동 324번지 일대 가꿈주택. 노후 단독·다가구 주택을 주민 스스로 고쳐 다시 사용하는 소규모 도시재생사업이 벌어진 곳이다.

15개 주택의 담장을 120㎝로 낮추고 집쪽으로 30㎝ 가량 들여서 골목을 넓혔다. 골목에는 CCTV와 가로등, 바닥등을 설치해 보안을 강화했다. 감나무가 많은 동네 특성을 살려 대문은 주황색으로 칠하고 감나무 모형 조형물도 설치했다.

우리동네키움센터를 찾은 박 시장이 아이들과 소원컵을 쌓고 있는 모습 사진 이제형

박 시장은 주민들에게 옥상에 텃밭을 가꾸거나 장독대 사업을 해보라고 권유했다. 골목을 사이에 두고 마주 한 집 주인들에겐 "담장을 허물면 30~50명이 앉아 마을영화제를 열 수 있겠다'고 추천했다.

시 지원 50%를 받아 집을 개조한 유완재(44)씨는 "주택에 살고 싶어 일부러 정비구역이 해제된 뒤 이사했다"며 "CCTV와 가로등이 설치돼 아이들이 안전하게 골목길을 다닐 수 있게 된 게 가장 좋다"고 말했다.

골목 안 빈터에서 주민 간담회가 열렸다. 주민 13명이 참석해 수박을 나눠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주민들의 주된 요청은 주차난 해소였다. 박 시장은 공유차량 시스템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그는 "모든 차가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웃 동네와 함께 힘을 합쳐 공유 차량을 하면 충분히 활용할 수 있고 비용도 절감된다"고 소개했다.

키움센터도 방문했다. 별별재미난교실이란 이름이 붙은 성북구 우리동네키움센터는 맞벌이나 한부모 가정 초등학생 자녀들의 방과후나 방학, 휴일 등 보육 틈새를 메꿔주는 지역돌봄 거점이다. 시는 늘어나는 돌봄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임대 중인 현 건물을 매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옥탑방 평상에서 인터뷰 중인 박원순 시장. 사진 서울시 제공

박 시장은 강북구 삼양동사거리에 있는 옛 강북보훈회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북구 관계자, 주민들이 모여 부지 활용방안을 논의했다. 여러 의견이 나왔지만 보다 많은 주민이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가스 들어온다는 게 정말이야?" = 정 모(66)씨는 "우리는 다 환영이다. 동네 좋게 바꿔준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나"면서 "나쁜 말 하는 사람은 다 딴 동네 사람들"이라고 했다. 한 주민은 "아직 일주일 남았잖아. 뭔가 내놓는다니 기다려줘야지"라고 말했다. 옥탑방보다 훨씬 윗쪽 언덕에 산다는 김은하(72)씨는 "도시가스가 안 들어오기 때문에 겨울이면 주민센터 가서 석유 얻어오는 게 제일 큰 일"이라며 "여름은 버틸 수 있지만 겨울엔 얼어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시장이 옥탑방 위쪽 도시가스 혜택을 보지 못하던 200여 가구에 가스 공급을 지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김씨는 "에이, 수십년간 안되던게 갑자기 되겠어. 해주면 너무 좋겠지만"이라고 말했다.

골목길에서 만난 또다른 주민은 "왜 와서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다"며 "특히 초중고생 자녀를 둔 엄마들 불만이 많다"고 했다. 박 시장이 뭘 해줬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뭐긴 뭐야. 우리 잘 살게 해주면 되지"라고 말하며 "하지만 기대는 안해.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니깐"이라고 말했다.

◆"불평등·격차해소에 행정력 집중할 것" = 박 시장에게 옥탑방 생활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물었다. 박 시장은 "역시 오길 잘했다. 현장에 가면 문제의 본질을 다 알 수 있고 답도 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마을 안에 모든 문제와 모든 해법이 다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면서 "서울시가 직면한 온갖 문제들도 결국 마을에서 답을 찾아야 하고 그 일을 위해 지금 마을 한복판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이야기가 강남북 격차해소에 이르자 박 시장 목소리가 격앙됐다. 박 시장은 "와서 보니 구멍가게 하나 없고 도로의 큰 가게들은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모두 점령했다"며 "우리 사회 불평등, 격차, 양극화 문제를 여기 와서 절감했고 이 문제를 푸는데 시정을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시장은 이어 "강북이 강남처럼 변하는 건 정답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생활 격차는 해소하되 강북이 가진 장점을 살리는 것이 지향해야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치니 오후 10시가 됐다. 박 시장은 이후에도 4개의 일정이 더 있다고 했다. 박 시장은 옥탑방살이가 끝나면 그간 준비한 정책을 다듬어 주민 보고회를 갖는다. 그는 "다양한 내용이 많이 준비했으니 기대해보라"고 말했다.

보좌관이 커다란 서류뭉치를 들고 옥탑방 안으로 들어갔다. A4 용지 묶음으로 100여개는 돼보였다.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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