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정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 "부실 학술할동 가이드라인 마련"

"연구비관리에 대한 연구자 자율성은 높이되 책임성은 강화해야 한다"

노정혜(사진) 한국연구재단 이사장은 16일 서울 광화문에서 취임 후 처음 개최한 기자간담회를 갖고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연구자들 부실학술활동 대책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한국연구재단은 2018년 기준으로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의 25.4%(5조원)를 관리·지원하는 기관이다.

노 이사장은 "연구자들의 허위 학술단체 참석이 늘어난 원인으로 △경고가 없었던 점 △연구비 정산주기 1년 △연구자 윤리기준 미흡 등 3가지"라며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고 정산기간 변화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연구자들이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하고, 정산기간에 맞추기 위해 억지로 연구비를 털어내는 구조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탐사전문매체 뉴스타파에서는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WASET)라는 이름의 유령국제학술단체가 세계 각국 연구자들을 대상으로 심사과정없이 논문을 게재해주거나 이름뿐인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해 참가비만 내면 참석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을 보도했다. 특히 이 학술대회에는 한국 명문대학 교수와 학생 700여명이 참석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구자정보시스템(KRI)을 통해 국내 연구자들 부실학술활동을 집계해 조사를 벌이고 있다.

노 이사장은 "반복성, 고의성이 의심되는 연구자의 경우 소명을 하도록 하고, 연구비 집행에 대한 내용도 들여다볼 계획"이라며 "연구자들의 윤리와 책임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더 커지고 있다. 연구재단도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노 이사장은 연구비정산 업무와 관련해 재단 역할을 축소하고 대학 연구비자정능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개선하겠다는 의지도 공개했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정산기준 간소화와 대학에서 연구비관리를 담당하는 산학협력단 전문화를 꼽았다.

그는 "대학에서 연구비 관리를 지원하는 산학협력단 등이 대부분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상황"이라며 "연구비 가운데 간접비 일부를 협력단을 전문화하는 데 쓸 수 있도록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 이사장은 서은경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에 대한 연구재단의 감사 결과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재료비 부정 집행 부분에 대해선 연구재단 차원에서 연구비를 환수하고, 국가 연구개발(R&D)사업 참여를 제한하는 등의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날 연구재단은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를 활용해 공정하고 전문적인 연구비지원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 플랫폼은 올해부터 2021년까지 앞으로 4년간 63억원을 들여 구축할 예정이다.

노 이사장은 "질적평가를 위한 보조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며 "기존 빅데이터를 최대한 활용해 평가자들 기록 등을 살펴 공정하고 전문적인 평가가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재단은 평가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연구사업관리전문가(PM)제도 개선을 추진하기로 했다. 학문·기술 분야 특성을 반영하기 위해 '학문·기술 분야별 연구사업 전략계획'을 수립한다. 또 국책사업은 동일인이 과제 기획과 평가업무를 겸하지 못하도록 과제기획위원과 과제평가위원을 분리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노 이사장은 지난달 9일 제6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3년이다. 서울대 미생물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86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일해왔다. 황우석 사태 당시 연구처장으로 진상조사에 참여했다. 국립서울대 법인이사, 기초연구연합회장,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 등을 지냈다.

고성수 기자 ssg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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