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호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

“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그릇 위에 가로 놓고 젓가락으로 잎을 두세 개 집어다가 떠 놓은 밥 위에 반듯이 덮은 다음 숟가락을 들어 입에 넣고 곧 장을 찍어 먹는다. 입에 넣을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싸서 볼이 불거져 보기 싫게 먹지 마라.”

이는 조선 중기 실학자 이덕무 선생이 집필한 책 ‘사소절(士小節)’의 한 대목으로, 아녀자가 쌈을 싸먹는 방법에 대해 기술한 내용이다. 맨 손바닥 위에 상추와 깻잎을 올리고 그 위에 밥과 쌈장, 게다가 고기와 마늘까지 얹어 볼이 미어지게 먹어야 쌈 좀 먹는다 하는 지금의 모습을 선생이 본다면 아마 예절을 모른다며 엄중히 꾸짖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렇게 먹든 저렇게 먹든, 쌀밥에 싱싱한 쌈 채소 그리고 입맛에 딱 맞게 적당히 찍어 넣은 쌈장이 한데 어우러진 쌈밥은 그 어떤 음식보다 조화롭고 흥미롭다.

우리나라만 즐기는 ‘쌈’

쌈은 세계에서, 그리고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들 중에서도 우리나라만이 즐기는 독특한 식문화다. 상추 깻잎 호박잎 배춧잎 미나리 쑥갓 콩잎뿐 아니라 미역 다시마 김 등 밭이나 들 바다에서 나는, 먹을 수 있는 온갖 잎들이 쌈 재료가 된다.

여러 가지 음식을, 그것도 날 채소와 익힌 곡식을 한데 섞어 먹는 쌈은 음식 각각의 본연의 맛을 즐기고 한 그릇에 담긴 음식을 나눠 먹지 않는 외국인의 시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화일 것이다.

한국인이 빈번하게 사용하는 ‘우리’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우리’ 민족은 너와 나를 구별 짓지 않고 이웃과 허물없이 지내며 나누고 공유하고 한데 어울려 보듬어주는 ‘쌈’과 같은 삶을 선호했다. 끼니 때 배고픈 이가 찾아오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나누었다. 찬이 없어도 좋았다. 금방 텃밭에서 따온 싱싱함이 뚝뚝 떨어지는 채소 한 소쿠리와 밥 한 그릇, 그리고 오래될수록 진한 맛이 느껴지는 구수한 장 하나면 되었다. 입 안 가득 밀어 넣은 쌈에 웅얼웅얼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해도 오고가는 눈빛과 흐르는 웃음소리는 단출하고 소박하지만 풍성함과 넉넉함을 느낄 수 있는 우리네 일상적인 밥상 풍경이었다.

최근 맞벌이 가정과 일인가구가 늘면서 해마다 식품·외식산업은 증가추세다. 집에서 직접 밥을 지어 먹기보다는 빠르고 간편한 서구화된 외식문화가 자리 잡았고, 여럿이 어울려 먹기보다는 각자의 일정에 맞춰 혼자 빠르고 간편하게 먹는 것이 대세인 시대가 되었다. ‘혼자 먹는 밥’이라는 뜻의 ‘혼밥’은 지금 시대를 상징하는 유행어기도 하다.

예전보다 쌀을 덜 찾게 되면서 쌀과 짝꿍인 쌈 또한 특별한 날에나 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되었다. 나누어 먹고 함께 먹고 서로의 입에 넣어도 주고 해야 제 맛인 쌈이 사라지니 우리 삶에서 어울림도 희미해졌다. ‘어울림’은 우리의 민족성 그 자체임에도 불구하고 존재의 당위성을 주장해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되었다.

‘어울림’ 있는 곳에 ‘쌀’도 함께

어쩌면 우리는 ‘어울림’과 함께 쌀의 중요성도 잠시 잊고 있는지도 모른다. 쌀은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 미네랄 등 10가지 영양성분이 골고루 들어있는 건강기능식품이다. 쌀에 함유된 필수아미노산은 성장발육촉진과 두뇌발달에 도움을 주며 식이섬유는 당뇨병과 고혈압 예방에, 인노시톨(Inositol)을 비롯한 항산화 성분은 지방간과 동맥경화 예방과 치료에 효과가 있다. 콩으로 만든 된장에는 쌀에는 부족한 필수 아미노산인 라이신(Lysine)이 들어있어 호르몬 균형과 면역력 증강을 돕고 식생활의 균형을 잡아주며, 이소플라본 성분이 항암과 갱년기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을 준다. 여기에 비타민과 무기질이 풍부한 제철 채소를 함께 섭취하면 그만한 건강밥상이 따로 없다. 먹을 것이 넉넉지 않던 옛날, 우리 조상은 이런 지혜로움으로 식사의 질을 높였던 것이다.

텃밭도 사라지고 장독대도 사라지고 어울림도 희미해졌지만 ‘우리’는 아직 여기 있다. 오늘 각자를 힘들게 했던 근심걱정은 뒤로 하고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고슬고슬한 쌀밥에 쌈을 즐기는 자리를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것이 집이어도 좋고 음식점이어도 좋고 바람 부는 강변이어도 좋다. 좋은 사람과 함께 어울리는데 어디든 좋지 않으리.

김두호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