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호열 한국지도학회 회장

과거에는 사람이 일일이 측량하고 작도하던 방식에서 지금은 각종 계측기기에 의해서 거리나 높이를 자동으로 측정함으로써 더욱 정확하고 더욱 신속하게 지도를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

하나씩 필사하는 방식에서 대량으로 인쇄하는 방식, 더 나아가 인터넷 상에서 공유하는 방식으로 기술이 발달하면서 지도를 누구나 손쉽게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타 분야의 최신 기술들이 접목되면서 공간정보 분야는 4차 산업 시대의 중추적인 새로운 인프라로 탄생하였다.

공간정보 분야는 4차산업시대 중추적인 새 인프라

고산자 김정호가 환생하여 이런 상황을 보았다면 제대로 물 만난 현재의 지리정보기술에 감격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꿈꾸었던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지도’가 전 국민의 삶 속에 깊숙이 파고 들어왔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나라는 지도는 물론이고 공간정보 분야의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었다.

최근 열흘 일정으로 불가리아를 방문하였다. 불가리아는 면적은 남한과 비슷하지만 인구는 700만 명에 불과한 발칸반도 남동부 흑해 연안의 작은 국가다. 학술대회가 개최된 소조폴은 흑해 연안의 작은 휴양도시로 구 시가지는 일찍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서 깊은 곳이고, 신 시가지는 양쪽의 넓은 해수욕장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경관을 뽐내고 있었다.

하지만 풍부한 유산과 유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미흡한 점이 너무 많았다. 소조폴의 옛 성벽은 제대로 복원되지 못하고 있었으며, 목재로 지은 많은 고가(古家)들 역시 훼손 상태가 심각하였다. 인근 라바디노보 성은 시멘트를 사용해 복원 작업을 해오고 있었고, 성 내부는 아직도 복원이 안 돼서 접근이 차단되어 있었다. 우리의 우수한 문화재 복원 기술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문화유산의 가치도 증진시키고, 관광 수입도 증대시킬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소조폴에서 학술대회를 마치고 소피아로 돌아와서 불가리아 명문 소피아 대학교를 방문하였다. 밖에서 본 소피아 대학교는 웬만한 궁궐을 방불케 할 정도였고, 내부의 스테인드글라스 장식은 종교적 신비감마저 느끼게 하였다. 하지만 강의실은 교수학습 기자재가 거의 없어 칠판과 책걸상이 전부였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공간정보 분야가 세계 선두에서 질주하고 있지만, 1960년대까지만 해도 불모지나 마찬가지였다. 이 당시 네덜란드 등 지도 선진국들의 지원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이런 성과를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UN이 우리에게 요청한 ‘인도적 차원의 아프리카 자원 공간 정보 구축’을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모범적인 국가 간 협력 모델로 소개될 정도이다.

불가리아가 추진 중인 해외 민간 기업과의 교류나 협력 사업도 그들 나름대로는 훌륭한 전략이라고 판단되지만, 우리나라가 정부 차원에서 지리정보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는 사업에 관하여 듣고 자신들도 비슷한 과정을 거쳐 선진 지도 제작 기술의 도입을 원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상당히 자랑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타깝기도 하였다.

우리가 지도 선진국의 도움을 받아 지도 및 공간정보 분야의 강국으로 부상했듯이 우리도 세계 발전의 선순환에 기여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불가리아는 아직도 정부가 지도 관련 정보를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민간의 활력이 긍정적으로 기여할 여지는 작지만 대부분의 선진국처럼 지도 제작 관련 정보를 모두 공개하여 산업 발전을 촉진시킬 날이 머지않았다.

스마트국토엑스포 코엑스에서 성황리에 개최

귀국 당일 예방한 주 불가리아 정진규 대사는 불가리아의 잠재력과 지정학적 우월성이 우리나라에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을 몹시 안타까워하며 우리나라와 불가리아가 상생할 수 있는 경제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지난 주 공간정보 분야의 축제인 스마트국토엑스포가 코엑스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국가 발전의 원동력으로 인식되고 있는 공간정보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룩한 각종 성과를 불가리아와 같은 다른 나라들과 공유하면서 상생 발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송호열 한국지도학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