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 서울시 기획담당관

자치경찰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연방제수준의 지방분권’을 약속했지만, 지방분권을 촉진할 여러 논의에 제동이 걸리면서 자치경찰제 논의 또한 크게 진전되지 못하고 있다. 꼬인 실타래를 풀려면 자치경찰제를 ‘왜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봐야 한다.

행정에 있어서 가장 큰 두 개의 가치는 ‘민주성’과 ‘효율성’이다. 민주성과 효율성 확보를 위해 행정의 모든 측면에서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자칫 한쪽이 지나치게 강조될 때 본말이 전도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자치경찰제에 대한 현재 논의가 표류하는 이유는 자치경찰제를 여전히 경찰행정의 ‘효율성’ 차원에서만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경찰의 효율성은 최고수준이다. 이를 더 높이기 위해 자치경찰제를 논의하는 것이 아니다.

자치경찰제 본질, ‘경찰 민주화’

문제의 핵심은 ‘경찰행정의 민주화’이다. 자치경찰제 논의가 주민이 경찰을 통제함으로써 ‘정권의 지역경찰’이 아닌 ‘주민을 위한 자치경찰’로 바꾸려고 했던 것에서 시작했음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10년전 자치경찰제를 공약으로 내걸었던 참여정부는 제주도에 자치경찰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반쪽짜리 자치경찰제였다. 국가경찰 1500여명을 그대로 남겨둔 채 120여명의 자치경찰을 중복으로 설치하는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모델을 도입했던 것이다. 제주 자치경찰은 국가경찰을 민주적 통제의 틀 속에 들여놓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실질적 권한도 없는 반쪽짜리 경찰을 중복으로 설치해 민주성과 효율성을 모두 놓치는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8년, 문재인정부가 똑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 참여정부시절, 정상적인 자치경찰제를 통해 경찰 분권화와 민주화를 이루었다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국정원 댓글 수사 축소의혹 사건과 쌍용차 파업 강제진압 사건 등에서 지역 경찰청장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앙정치가 지역경찰에 여과없이 투영되는 것을 보며 자치경찰제 도입과 경찰민주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절감한다. 권력기관에 대한 민주정부의 우선과제는 더 효율적인 조직을 만들기 보다는 더 민주적인 통제를 설계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국정원, 검찰, 기무사가 그 과정 속에 있다.

이제 경찰이다. 현존하는 국가경찰체제를 경찰서와 파출소까지 그대로 존치시키면서 자치경찰을 새로 만들자는 제주 자치경찰 모델은 경찰 민주화의 진전도, 경찰 효율성의 증대도 달성하지 못하는 실패한 모델이다.

도입취지에 맞는 진정한 자치경찰제를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주민이 가까이서 통제할 수 있도록 중앙에서 지방으로 경찰권을 분권화해 ‘민주성’을 확보하고,소방서가 국가와 지방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는 것처럼 지역 내 치안기관을 자치경찰로 일원화해 ‘효율성’을 담보하여야 한다.

더 이상 가짜 자치경찰제 모델에 현혹돼선 안된다. 23년 전 민선 지방자치제를 도입할 때를 돌아보자. 그때도 지금 자치경찰제 논의처럼 ‘효율성’이라는 명분을 뒤집어쓴 반민주적 반대논리가 횡행했다. 하지만 2018년 현재 지방자치제는 대한민국 민주주의 제도적 보루이자 국민주권의 살아있는 현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자치경찰제 도입, 국민주권과 민주주의 진전 위한 것

시·도 지방경찰청 이하 조직과 권한을 주민의 감시와 통제내로 분권화하는 진정한 자치경찰제의 도입은 국민주권과 민주주의의 진전을 위한 것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이를 위해 다시는 과거의 권위주의 경찰, 중앙정권을 위해 복무하는 경찰로 되돌아가지 않도록 불가역적 구조 개편을 이루어야 한다.

현 정부의 많은 정책이 참여정부와 닮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참여정부와 무조건 달라야 한다는 것이 좋은 정책을 가르는 잣대는 될 수 없다. 필요하다면 당시 정책을 다시 검토하고 계승하는 것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문제는 실수의 반복이다. 10년 역사를 문제점이 분명히 드러난 제도를 그대로 차용하는 일은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자치경찰제 논의에 있어서만큼은 참여정부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박진영 서울시 기획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