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케이아시안리뷰

"아시아 동맹들이 반드시 미국을 따를 것이라 보는 건 무리"

뉴욕타임스(NYT)의 저명한 기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2005년 저서 '세계는 평평하다'(The World Is Flat)에서 "세계화란 경제대국 미국과 중국이 서로 긴밀히 얽힌, 멈출 수 없는 흐름"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프리드먼의 주장처럼 과거엔 세계가 평평했을지 모르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지 않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이 된 이후 세계는 뒤틀어지기 시작했다.

호주 시드니 소재 싱크탱크인 '로위연구소' 동아시아 선임 연구원 리처드 맥그리거는 22일 '닛케이아시안리뷰' 기고에서 "미 워싱턴 정가의 화두는 이제 미국과 중국 간 '디커플링'(decoupling, 탈동조화)"라며 "미국은 국가이익과 안보를 위해 핵심 산업부문에서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를 끊어내기 시작해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미국이 그런 정책을 추진하는 데엔 명암이 갈릴 것으로 전망됐다. 맥그리거 연구원은 "미국은 신중히 고민해야 한다"며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은 잠재적으로 결함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아시아 동맹국인 일본과 한국 대만 싱가포르 등은 경제와 관련해 미국보다 중국에 훨씬 더 밀접하게 연계돼 있다"며 "따라서 아시아 동맹국들이 반드시 미국의 뜻을 따를 것이라고 보는 건 무리"라고 강조했다.

4개국 경제는 중국과 상호관련돼 있다. 반도체 등의 고부가가치 부품들을 중국에 공급하면 중국에서 조립 등의 작업을 거쳐 최종재로 완성한다. 중국 내 공장들도 대개 4개국 다국적기업의 소유인 경우가 많다. 이렇게 완성된 제품을 중국 등에 수출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대중국 탈동조화 정책 때문에 동맹국들은 '미국이냐 중국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난처한 처지에 몰렸다. 이들 나라에겐 피하고 싶은 선택지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조건에선 더욱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탈동조화의 가장 극단적인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첨단 기술뿐 아니라 중국에 있는 미국 기업의 모든 공급망을 본토로 이전하길 원한다.

예를 들어 애플은 아이폰 등의 제품 최종 조립을 중국 남부와 중부의 공장들과 계약을 맺어 처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같은 애플 조립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라는 뜻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트럼프 정책은 이미 진행중이다. 올해 초 중국의 대미 수출품 500억달러에 대해 관세를 매겼다. 여기엔 미국 행정부가 중국 밖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여기는 기술제품들을 대거 포함하고 있다.

1950년대 일본을 필두로 아시아 동맹국들의 경제성장 경로는 비슷했다. 아시아 국가들은 처음에 저렴한 노동력, 국가보조금을 기반으로 한 자본을 통해 나라 전체를 다양한 제품의 최종 조립공장처럼 돌렸다. 이를 통해 얻은 부를 선진 산업기지를 짓는 데 썼다. 중국은 이런 성장모델의 최정점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탈동조화 방침은 동아시아에 정착된 이같은 모델을 근본적으로 뒤흔들겠다는 것이다. 그 피해는 중국뿐 아니라 거기에 긴밀히 연계된 동맹국들도 입게 된다.

미국은 1980년대 말 일본이 직접적인 경쟁국으로 등장하자 기민하게 움직였다. 일본을 압박해 대미 수출에 제한을 가하고 시장 개방을 강요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은 동맹이었다. 이는 양국의 무역전쟁이 공통의 국가안보 이해관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조절됐다는 의미다. 반면 중국은 미국과 지정학적, 정치적, 군사적 경쟁 관계에 있다. 게다가 과거 일본보다 훨씬 가공할 만한 경제대국이다.

그동안 미국의 대중 정책은 중국이 시장 경제를 채택하면 서구 정치모델에 가까운 체제로 변할 것이라는 전제에 기반했다. 하지만 그런 바람은 현실화되지 않았다.

맥그리거는 "이달 미국 워싱턴에서 무역전쟁과 관련한 여러 회의에 참석했는데 미국측 관료들은 '더 이상 중국의 경제성장을 돕는 일은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미국은 보다 직접적으로 우리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정책을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며 "이는 미국 기업들에게 '선진 기술과 핵심 산업과 관련해서는 절대 중국과 함께 일해선 안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은 '미중 탈동조화 전략을 진즉에 썼어야 한다'는 것. '중국제조 2025' 전략을 통해 중국이 이미 선진국, 특히 미국의 첨단기술을 자국으로 이전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맥그리거는 "중국은 자유무역 시스템을 통해 혜택을 입었지만 자신들이 새롭게 축적한 부를 이용해 외국을 내쫓고 자국 경제의 전략적 부문을 폐쇄화하려 한다는 게 미국측 시각"이라며 "하지만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이 미국을 내쫓으려는 중국의 결심을 더 자극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중국 정부를 경악케 한 상징적 사건은 중국 이동통신 거물기업 ZTE에 대한 미국의 조치였다. 이란 제재방침을 어겼다는 이유로 ZTE에게 미국의 기술을 팔지 못하도록 협박했기 때문이다. 만약 미국이 협박을 철회하지 않았다면 미국 반도체의 크게 의존하고 있는 ZTE로서는 사업을 접는 것은 물론 8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실직했을 터였다. 그같은 해프닝은 중국에 커다란 경계심을 안겼다.

아시아의 일부 국가들은 미중 탈동조화에 혜택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미 말레이시아와 대만이 중국 내 다국적 기업들 생산기지를 유치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하지만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내쫓는다면, 미국은 결국 동맹국 또는 친미 국가들의 기업에 큰 불이익을 주는 것이고 나아가 해당 기업의 본국에도 피해를 줄 수밖에 없다.

맥그리거는 "미중 탈동조화론은 이론상으로는 괜찮게 들리지만, 거칠고 조악하게 추진되면서 미국에게 실제적이고 정치적, 경제적인 악영향을 줄 것"이라며 "중국으로부터 기업들을 빼앗아오기는커녕 글로벌 공급망에 얽힌 나라들이 중국과 더욱 밀접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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