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광주 이어 경기·인천 제도도입

부산·경남 준비 … 대구도 논의 활발

속도 못 내는 정부 산하기관과 대조

전국 지자체들이 산하기관 노동이사제(근로자 이사제)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서울시와 광주시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고, 내년에는 경기도와 인천시가 합세한다. 부산 경남 대구 등 다른 지자체에서 제도 도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 민선 7기 안에 절반 이상 지자체들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 구성원으로 참여해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인천시의회 기획재정위원회는 19일 '인천시 근로자 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안'을 수정 가결했다. 20일 본회의에서 조례안이 최종 가결되면 내년부터 제도가 시행된다. 인천시의회는 더불어민주당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다 인천시도 조례안에 동의하고 있어 통과가 무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천시 대상 기관은 인천도시공사 인천관광공사 인천교통공사 인천환경공단 인천시설공단 등 5개 공사·공단과 인천의료원 인천경제산업정보테크노파크 등 2개 출연기관이다. 모두 정원이 100명 이상인 기관이다.

경기도는 앞서 지난달 23일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 산하 25개 공공기관 중 경기도시공사 등 11개 공공기관이 내년 1월부터 노동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대구·부산·경남 등에서도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 소속 광역의원들이 제안하거나 관련 조례안을 발의한 상태다. 대구의 경우 민주당 소속 김동식 대구시의원이 조례안을 발의했고, 지난달 한 차례 심사를 보류해 이번달 임시회 때 논의된다. 지난 5일에는 시민사회가 주도한 토론회도 열렸다. 김동식 시의원은 "노동이사제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라며 "대구시가 준비부족을 이유로 심사를 보류했지만 다음달에는 논의가 진행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부산에서는 이영찬 시의원이 제도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집행부가 제도 도입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민주당 소속 시의원들과 노동계 요구가 높아 논의는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경남도는 집행부가 더 적극적이다. 김경수 도지사 공약사항을 이행한다며 조례 제정을 준비 중이다. 부산·울산도 노동이사제가 시장 공약에 들어있어 내부 검토가 진행 중이다.

충청권에서는 논의가 시작되는 단계다. 대전에서는 지난 9월 설동승 대전시설관리공단 이사장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시의원들의 요구에 "제도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답했다. 충남도는 안희정 전 지사 시절부터 논의가 시작돼 내부적으로는 무르익었다는 평가다.

한편 노동이사제를 가장 먼저 시작한 서울시는 현재 16개 기관에서 22명의 노동이사가 활동 중이다. 서울시 노동이사제는 2014년 11월부터 도입이 추진됐다. 1년 8개월간의 의견수렴 기간을 거쳐 2016년 9월 29일 '근로이사제 운영에 관한 조례'를 제정했고, 2017년 1월 국내 1호 노동이사가 탄생했다. 이후 기관별로 속속 노동이사를 선출, 올해 3월 120다산콜재단을 끝으로 16개 의무도입기관에서 모두 노동이사 선임을 완료했다.

노동이사제에 대한 평가도 긍정적이다. 한 노동이사는 "처음에는 노동자들의 의견을 경영에 반영하겠는 것이 목표였는데, 막상 들어가 보니 이사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을 노동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크다"며 "이사회 결정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하지만 이사회 참여 자체가 충분히 의미 있다"고 말했다. 제도가 도입된다고 모두 노동이사제가 안착되는 것은 아니다. 광주시는 노동이사 제도가 도입됐지만 산하기관 중 실제 노동이사를 선임한 곳은 한 곳도 없다. 이 때문에 올해 행정사무감사에서 시의원들의 강한 비판을 받았다. 김용집 광주시의원은 "도시공사는 1명, 도시철도공사는 2명, 환경공단 1명 등 3개 기관에 모두 4명의 노동자이사가 선임돼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한 명도 선임되지 않았다"며 "일부 기관은 정관 개정조차 안 된 곳이 있다"고 지적했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를 기업 경영 주체로 인정하고 노동자에게도 경영 참여 권한을 주는 제도로, 독일을 포함한 유럽에서 보편화돼 있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7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통해 올해부터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기로 했지만 야당과 경제부처의 반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김신일 곽태영 이제형 방국진 최세호 기자 ddhn21@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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