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원내대표에 "한발씩 물러나라" 주문

취임 후 당대표·원내대표들과 정기회동 주선

연말 국회가 꽉 막혀 있는 가운데 문희상 국회의장이 중재자로 나섰다. 자타가 공인하는 의회주의자인 문 의장이 취임이후 추진해온 중재자로서의 역할이 시험대에 올랐다.

21일 국회의장실 핵심관계자는 "문 의장이 전날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찾아온다고 해서 먼저 홍영표 여당 원내대표를 만났다"면서 "여야 양측이 한발씩 물러설 것을 주문했다"고 전했다.

문 의장은 이날 오후 의장집무실에서 원내대표들과 만나 "각자의 입장만 고수하면 국회가 돌아가기 어렵다"면서 "합의점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 4당이 요구하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는데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예산안과 법안 심사를 진행하지 않는 등 '상임위 보이콧'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을 풀기 위해 중재에 나선 것이다.

이 자리에서 홍 원내대표는 "일단 국정조사를 받으면 나머지 국회일정은 정상화시키겠다고 했기 때문에 그것 놓고 당 의견 수렴을 해야 한다"며 "의총을 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 수용여부를 최종적으로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의장은 '야 4당만의 국정조사 요구안' 상정카드를 제시하지 않았다. 여당에 압박으로 인식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당이 강원랜드, 서울교통공사 등을 포함한 공공기관의 채용비리 전반에 대한 국정조사를 수용하는 대신 예산소위 구성 등 예산안 심사와 법안 논의, 대법관후보자 인사청문회 개최, 5.18 진상규명위원회 의원 추천 등 국회 정상화에 자유한국당 등 야당이 협조하는 쪽으로 이견이 좁혀지는 분위기다. 공공기관 채용비리 국정조사를 '감사원 감사 이후'보다는 '전수조사 이후'로 잡는 쪽으로 검토하는 등 가동 시점에 대한 논의도 진행됐다.

문 의장은 취임 직후부터 격주로 월요일 오전에 각 당 원내대표들과 만나 현안을 놓고 비공개로 논의하는 테이블을 만들어놨다. 매월 첫째주엔 당대표 모임인 '초월회'를 기획해 실행중이다. 청와대 주도로 이뤄지는 여야정협의체와 별도로 정기적인 만남을 주선해 서로 입장을 확인하고 이견을 좁히려는 의도다.

의장실 핵심관계자는 "만나는 것이 쌓이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면서 "만나서 얘기하고 털어놔야 입장도 서로 알고 합의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산안과 법안뿐만 아니라 인사청문회와 국정조사까지 겹친 정기국회는 앞으로 갈 길이 멀다. 국회 선진화법에 따라 입법부의 수장인 국회의장의 권한이 많지 않다. 직권상정이 매우 제한돼 있다. 날치기가 사실상 차단됐다. 청문위원 선임권, 자동부의된 예산안 상정권, 신속처리안건 상정권 등이 있을 뿐이다.

문 의장은 제한적으로 주어진 직권상정권마저 될 수 있으면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합의되지 않은 법안이나 예산안을 일부 정당에서 반대할 경우엔 최대한 시간을 주겠다는 얘기다.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헌법재판관 3명에 대한 본회의 동의건이 처리되지 않아 헌법기관의 공백이 장기화될 때도 여야간 합의를 주문했다. 당시 상황을 잘 아는 국회 사무처 핵심관계자는 "마지막에는 의장도 직권상정을 고민하긴 했지만 최대한 여야 합의를 기다리려고 했다"고 설명했다.

문 의장이 '신뢰'를 중재자의 최대 덕목으로 보고 있다. 탈당해 무소속이 된 만큼 여당뿐만 아니라 야당으로부터도 신뢰가 쌓여야 '중재'가 효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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