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

'다 해결된 줄 알았다'

가습기 살균제 참사에 관해 연락해 오는 기자들의 반응이다. 시민들도 다르지 않을 듯하다.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고 판 가해기업들로부터 배.보상을 받았고, 제품을 만들고 파는 데 관여한 임직원들은 처벌을 받았을 것이라 믿는 시민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겪은 이 나라는 피해 구제는커녕 피해 규모조차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가해기업들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지도 못하고 있다.

700명 이상의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낳은 옥시레킷벤키저를 비롯해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용마산업), 세퓨 등 일부 가해기업들은 지난 2016년 검찰 수사를 받았다. 옥시 신현우 전 대표가 징역 6년형을 받는 등 임직원들 일부만 처벌받고 있을 뿐이다.

원료 개발한 SK케미칼은 검찰수사 안 받아

원료물질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 옥시 등에 그 원료를 팔고, 가습기 살균제 제품까지 만들어 팔았던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은 검찰 수사조차 받지 않았다. 가습기살균제참사전국네트워크가 지난 11월 27일 서울중앙지검에 SK케미칼과 애경산업 전현직 대표들을 다시 고발한 까닭이다. 피해자들은 몇번이고 고발했고, 가습기넷도 지난 2016년 8월에도 이들 가해기업들을 고발했지만, 피해자들과 시민들을 대신해 칼날을 휘둘렀어야 할 검찰과 공정위 등은 유독 이들 가해기업들 앞에서 멈춰서거나 머뭇거렸다.

원료물질인 CMIT.MIT의 인체 유해성이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미 해외에서는 동물 유해성이 확인됐고, 우리나라 연구진들도 인체 유해성을 속속 보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수사.조사기관들은 절대 먼저 움직이는 법이 없다. 그 사이 공소와 징계 시효는 하염없이 지나고 있다. '인체 무해' '몸에 좋다'고 광고해대던 가습기메이트 제조판매사 SK케미칼과 애경산업을 표시광고법 위반으로도 결국 기소하지 못했다. 공정위의 뒤늦은 고발에 검찰이 시효가 지났다고 화답한 탓이다.

그런 사이 옥시 제품들에 들어있던 PHMG나 PGH 뿐 아니라, 함부로 쓰여선 안 될 문제의 CMIT.MIT는 치약, 각종 세제, 물티슈, 김서림 방지제 등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널리 쓰이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에 어찌 쓰이고 있는지 시민들은 일일이 알기 어렵다. 정부나 관련 기관들은 알아낼 때마다 해당 업체들에 제품 판매를 중단하고 회수하도록 '권고' 수준에 그친다. 문제의 제품들은 인터넷 등을 통해 헐값에 다시 풀린다.

기체 상태로 흡입하면 사람 폐를 수세미로 만들고 몸 여러 곳에 치명타를 안기는 '세계 최초' 화학물질은 '세계 유일', 바로 우리나라에서만 유례를 찾을 수 없는 대참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정치권은 배상 상한 3배 따위의 숫자놀음만 하고 있다. 우리도 배상액 상한 없는 징벌적 배상법과 소비자 집단소송제로 천문학적 배상액을 물을 수 있다면, 제품 정보를 모두 가진 기업들에 입증 책임을 물을 수 있다면, '가습기 살인제'를 내놓을 엄두를 낼 수도 없었을 것이다.

또 다른 참사 잉태되고 있을 것

영국에 본사를 둔 옥시레킷벤키저(RB코리아), 독일의 BMW... 글로벌 기업들조차도 유독 이 나라에서만 버티며 소비자의 아우성을 비웃는 '자유'를 누려 온 까닭은 기업들 눈치만 보는 정치권의 무능과 검찰 공정위 사법부의 무딘 칼날, 대형로펌들의 교활함이 뒤를 떠받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의 '가습기살균제 피해지원 종합포털' 자료에 따르면, 지난 11월 26일까지 정부로 신고한 피해자가 6215명, 그 가운데 사망자가 1360명에 이른다. 피해자들 대다수는 정부의 더딘 피해 판정조차 받지 못하거나, 정부 지원을 받을 수 없는 3,4단계로 분류된다. 참사는 '아직도' 어딘가에서 진행 중이며, 또 다른 참사가 잉태되고 있다. 무엇도 달라지지 않은 '이 나라'에서는...

장동엽 참여연대 선임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