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불거지면 앞다퉈 법안 발의하지만 '흐지부지'되기 일쑤

'위험 외주화 방지법' 통과됐다면 김용균씨 희생 막았을 수도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발생한 김용균씨 사망사고로 국회의 '용두사미'식 입법행태가 도마에 올랐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위험을 떠넘기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법안이 진작 통과됐더라면 아까운 희생이 반복되는 일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지적이다.
태안화력 비정규직 근로자 추모문화제 | 13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씨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박동주 기자

14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대 국회 들어 발의된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은 10여개에 달한다. 상시적이고 위험한 작업의 하청을 금지하거나 원청의 책임을 강화하고 사고발생시 원청업체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들이다.

2016년 5월 서울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수리작업을 하던 김 모군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하자 여야 각 당은 앞다퉈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안'들을 발의했다. 그해 6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위험한 업무의 하청을 못하도록 하는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고 8월에는 당시 국민의당 김동철 의원이 위험사업장에 대한 원청기업의 산업재해예방조치를 의무화하고 사고발생시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을 내놨다. 소병훈, 신창현 민주당 의원과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도 유사한 내용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산업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해 노동자가 숨지면 기업에 형사처벌과 벌금을 부과하는 '기업살인법'도 4건이 발의됐다.

올 10월말 정부가 내놓은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개정안에도 원청사업주가 안전조치를 해야 할 범위를 사업장 전체로 확대하고 위반시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이 담겼다.

사실 구의역 사고 직후만 해도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은 쉽게 국회에서 처리될 것으로 예상됐었다. 위험한 작업을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에게 떠넘기고 사고가 나도 원청업체가 책임지지 않는 부당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컸던 까닭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부담이 커진다는 반대와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등 현안에 우선순위가 말리면서 이들 법안은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삼성중공업 크레인 사고, STX조선해양 폭발사고, 포스코 냉각탑 가스질식사 등 힘없는 하청업체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사망하는 사고는 계속됐다.

문제가 발생하면 정치권이 당장에라도 법 개정을 통해 해결할 것처럼 나서지만 결국은 흐지부지되고 마는 일은 반복돼왔다.

올초 사회적 이슈가 됐던 '미투'는 대표적인 예다. 서지현 검사의 성희롱 피해 고발로 '미투' 바람이 불고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여야정치권은 연일 '미투법안'을 쏟아냈다. 미투와 관련돼 발의된 법안은 100여건이 넘는다. 하지만 이 가운데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10여개 정도에 불과하다. 데이트폭력 등 피해자에 대한 정부 지원 근거를 담은 여성폭력방지기본법 제정안이 처리되는 등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투 관련 대부분 법안들을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의료계 성폭력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전공의법 개정안, 학교 내 성폭력을 예방하기 위한 교육공무원법 개정안과 사립학교법 개정은 국회 계류중이고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사항을 노사협의회 협의 사항으로 명시토록한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법 개정안, 사업주의 성희롱이나 징계 미조치 등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양립지원법 개정안 등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올해 국정감사에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사립유치원 비리를 근절하기 위한 '유치원 3법'도 한국당의 반대로 정기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12월 임시국회에서 '유치원 3법'을 처리한다는 방침이지만 한국당과의 이견이 큰데다 선거제도 개혁 문제로 한국당을 제외한 야3당과의 공조도 어려워 연내 통과가 불확실하다.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1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12월 임시국회를 열어 유치원 3법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본홍 기자 bhkoo@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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