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이후, 3~4년 후가 걱정" … 정부가 방향틀자 뒤늦게 비판 지적도

홍남기-이주열 오찬회동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경제정책 운영의 핵심으로 선도산업의 육성과 이를 위한 규제혁파 등을 제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같은 날 정부의 산업정책에 대해 자성한다며 반성문을 쓴 날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8일 저녁 출입기자단과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한국은행 제공

이 총재는 18일 저녁 출입기자단과 가진 송년 간담회에서 "새로운 선도산업의 육성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하면서도 이를 위한 규제완화와 투자확대는 당사자들의 이해상충과 기존의 사고방식, 관행에 가로막혀서 성과가 미진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세계 도처에서는 4차산업혁명의 진전과 함께 미래경제를 선도할 첨단기술산업 육성을 위한 혁신과 경쟁이 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차원에서도 숨막힐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데 우리 내부의 변화는 더디기만 하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총재는 또 "우리경제의 향후 성장동력을 어디서 찾아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더 이상 대처를 미룰 수 없는 과제"라면서 "지난해 이후 반도체 호황이 우리경제를 이끌어 왔지만 앞으로 3∼4년 후, 5년 후를 내다보면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이 총재의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이날 산업부 업무보고에서 정부의 산업정책이 부재했다는 발언이 나온 직후여서 주목된다. 정부가 그동안 미래먹거리를 위해서 새로운 선도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만하면서 실질적으로 이를 위한 투자환경을 조성하지 못했다는 지적으로 읽힌다.

그는 "몇 년후 우리경제가 글로벌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새로운 각오로 성장동력이나 선도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함께 힘을 모아나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에 앞서 문 대통령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산업통상부 업무보고에서 "산업 생태계가 이대로 가다가는 무너지겠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면서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정부의 뼈아픈 자성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총재의 이러한 지적에 대해 비판도 있다. 정부가 그동안 성장정책의 부재를 지적하는 비판에 침묵하다 산업정책의 중요성을 인정하면서 방향을 틀자 이 총재가 뒤늦게 목소리를 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문재인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미래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산업정책이 없으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지적이 계속 있었다"면서 "정부가 잘못을 인정하자 한은 총재가 뒤늦게 따라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올만 하다"고 했다.

실제로 이 총재는 올해도 정부의 최저임금정책에 대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사실상 인정하면서도 확실하게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다 문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에서도 '최저임금 속도조절론'이 나오자 각종 보고서를 쏟아내는 등 공개적으로 비판대열에 합류하는 태도를 보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 총재는 지난달 기준금리를 0.25%p 올린 것과 관련 금융불균형의 확대를 막기 위해 불가피한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그는 "기준금리가 낮은 수준에서 계속 유지될 경우 금융불균형 확대로 우리경제의 취약성이 한층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결정이었다"면서 "이는 우리 경제가 이번 금리인상의 영향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19일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홍 부총리가 취임 인사차 한은을 방문하는 형식을 빌어서 만난 두 사람은 미국의 금리인상 등 금융시장 현안과 실물경제 상황에 대해 논의하고, 경제상황 전반에 대해서 인식을 함께 했다.

이날 두 사람의 첫 만남을 계기로 정부와 통화당국의 공조가 계속될지도 관심이다. 전임 김동연 부총리 때는 임기 1년 6개월 동안 이 총재와 8차례나 만나 경제 현안에 대해서 머리를 맞댔다.

이와 관련 관가와 금융계에서는 홍 부총리와 이 총재는 물론, 최종구 금융위원장까지 강원도 출신이라는 점이 화제다. 홍 부총리는 춘천에서 태어나 춘천고를 졸업했고, 이 총재는 원주 출생에 원주 대성고를 졸업했다. 최 위원장은 강릉에서 태어나 강릉고를 졸업했다.

백만호 성홍식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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