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욱 이화여대 교수

올해는 1919년 국제노동기구(ILO)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1차 세계 대전의 참혹한 결과에 대한 반성으로, 사회정의가 없다면 세계평화도 존재할 수 없다는 이념 위에 설립되었다. ILO는 UN은 물론이고, 그 어떤 국제기구 보다 역사가 오래되었다. 역사만 긴 것이 아니다. 열정적인 활동을 통한 세계 평화에 대한 공헌과 노동에 관한 전문성을 인정받아,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였던 1969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ILO의 기본적인 임무는 선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을 불문하고 모두에게 적용되는 보편적인 최소한의 노동기준을 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세계 공통의 노동법을 만드는 곳이다. 이 노동기준을 ILO 협약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ILO 협약은 노동법의 모든 분야에 걸쳐 189개가 채택되어 있다. 이중에서 ILO는 8개 협약을 기본협약으로 분류한다. 189개 협약 중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적인 협약이라는 뜻이다. 170개국을 넘는 국가가 8개 협약을 모두 비준하고 있다.

새로운 노사관계 형성을 향한 출발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ILO를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른바 위안부 강제동원을 이유로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극단적인 인권유린에 해당하고 동시에 강제노동을 금지한 ILO 29호 협약을 위반하였기 때문이다. 그 일본마저 1932년에 이 협약을 이미 비준하였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비준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강제노동은 몇 년 전 우리나라에서 큰 사회문제가 되었던 염전노예와 같은 것만이 아니다. 병역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입대를 하였는데, 산업기능요원으로 일한다든지, 의무경찰이 된다든지 하는 것도 국제노동기준에서 보면 강제노동에 해당한다. 21세기에 들어서도 이 협약을 비준하지 못한 전 세계 단 9개 국가 중 하나에 우리나라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단결권 또는 결사의 자유에 관한 87호와 98호 협약 역시 비준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규모만 성장하였지 노동인권에 관한 한 책임 있는 국제사회 일원으로서의 자격, 문명국가 최소한의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솔직한 민낯이다.

이명박 정부 때 국회의 동의를 받아 EU와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에서는 우리나라의 ILO 기본협약 비준의무를 아예 명시하고 있다. 한-EU FTA 비준동의안이 국회를 통과한 2011년 이미 여야는 ILO 기본협약을 비준하겠다는 것에 동의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도 기본협약 4개를 비준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FTA 위반이라는 EU의 주장에 대응할 마땅한 논리가 없다. 수출로 먹고 사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마디로 ILO 기본협약 비준은 부끄러움의 문제도, 여야의 정치문제도, 노사 어느 측에 유리한가의 문제도 아니다. 국제경쟁의 냉혹한 현실 속에서 노사가 공존할 것이냐 공멸할 것이냐의 문제이다.

작년 11월 17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산하 노사관계제도관행개선위원회에서는 경영계 추천 위원을 포함한 공익위원 8명 전원이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법개정의견을 만장일치로 채택한 것은 그 절박함의 표현이다. 그리고 이 합의는 한정애의원 대표발의로 12월 28일 국회에 제출된 법개정안에 반영되어 있다. 공익위원의견과 한정애의원안에 대해서는 노사를 막론하고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경영계에서는 노동계에 유리한 ‘뒤집어진 운동장’을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국제노동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노사가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그것은 근거가 없거나 국제노동기준에 대한 그릇된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다.

노사 공존이냐 공멸이냐의 기로

공익위원의견과 이를 반영한 한정애의원 발의 법안은 물론 완성본이 아니다. 그러나 21세기 새로운 노사관계 형성을 위한 출발점으로서는 손색이 없다. 노사나 여야가 새로운 내용을 합의할 수 없다면 또는 합의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최소한 노동법 전문가들이 일치하여 동의한 이 법안이라도 통과시켜야 한다. 기본적인 노동권을 준수하는 것은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다. EU만이 아니라 전 세계가 우리 행보를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노사와 정치권은 잊어서는 안 된다. ILO 설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역사적인 해의 주인공은 우리나라가 되어야 한다.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