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의 문턱 버지니아에서 서열 1위인 주지사, 2위인 부지사, 3위인 주 법무장관이 동시에 스캔들에 휩싸여 버지니아 정치권이 대혼란에 빠져들면서 워싱턴 중앙정치까지 흔들고 있다.

버지니아 서열 1~3위 모두 스캔들

랠프 노섬 주지사는 35년 전 인종주의 사진으로 자당 내에서조차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노섬 주지사는 1984년 이스턴 버지니아 의과대학 졸업앨범에서 백인 우월주의 단체 KKK 복장과 흑인분장 등을 한 사진들이 잇따라 드러나면서 주지사 사퇴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졌다. 특히 노섬 주지사는 처음에는 사과했다 다음에는 "사진 속 인물이 나는 아니다"고 발뺌하며 사퇴를 거부하는 모습을 보여 논란을 증폭시켰다.

노섬 주지사는 자당 내에서조차 사임요구가 봇물처럼 터져나왔음에도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 버지니아 주지사의 과거 인종주의 행태는 소수계 보호를 내건 민주당 전체에 두얼굴, 이중성으로 지탄받게 만들고 있다.

스캔들을 일으킨 버지니아 3인방(왼쪽부터 저스틴 패어팩스 부지사, 마크 헤어링 주 법무장관겸 검찰총장, 랠프 노섬 주지사)


버지니아주 사법당국 수장인 민주당 소속 마크 헤어링 주 법무장관겸 검찰총장도 대학시절 흑인분장을 했다고 시인해 파문이 일고 있다. 헤어링 장관은 "UVA 버지니아대학에 재학하던 1980년대 한 파티에서 흑인분장을 하고 래퍼처럼 행동한 적이 있다"고 시인했다.

그는 "대학시절 친구들과 흑인 래퍼처럼 보이려고 황색으로 메이크업 분장을 한 적이 있다"며 "자신의 행동으로 있어서는 안될 잘못된 역사를 상기시키고 고통을 준데 대해 깊이 사과한다"고 밝혔다. 헤어링 장관의 즉각적인 시인과 사과 때문인지 노섬 주지사 때와는 달리 사퇴 요구가 쏟아지지는 않고 있으나 본인은 사퇴용의를 밝혀놓고 있다.

30대에 부지사에 선출돼 오바마와 같은 정치적 야망을 가진 저스틴 패어팩스 부지사는 15년전 여성 두명에 대한 성폭행 의혹에 휘말렸다.

주지사 인종주의 사진을 폭로했던 같은 정치 블로그에서 한 여성은 지난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 참석하던 중에 패어팩스 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녀는 자신은 성폭행 당한 악몽을 잊기 위해 10년 이상 고통스런 생활을 하고 있는데 정작 가해자인 페어팩스가 부지사에 당선된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해 폭로하게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페어팩스 부지사는 "나는 누구도 폭행한 적이 없다"며 강하게 부인했다. 그는 특히 "이 여성은 이미 자신이 부지사에 취임했던 지난해 초 워싱턴 포스트에 접근해 이번과 같은 성폭행 주장을 폈으나 포스트 조사 결과 아무런 혐의가 없어 보도되지 않았다"며 그녀의 성폭행 주장을 일축했다. 페어팩스 부지사는 사퇴요구를 받고 있는 노섬 주지사가 사임할 경우 주지사를 이어받을 1순위자라는 점에서 파란이 일고 있다.

패어팩스 부지사는 사퇴보다는 조사가 우선이라는 반응이 많아 사퇴압박을 받지는 않았으나 성폭력을 폭로한 두 번째 여성이 등장하면서부터는 사퇴하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버지니아 주선거, 내년 대선까지 여파

버지니아주 정치를 이끌고 있는 1~3인자들이 스캔들에 발목을 잡히자 오는 11월 실시되는 버지니아 주 의회 선거는 물론 내년 11월 치러지는 2020년 대선과 총선에도 여파를 미쳐 워싱턴 정치까지 흔들릴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우선 오는 11월 버지니아 주선거에서 수년 간 쌓아온 민주당 약진이 꺾이거나 멈출 조짐을 보이고 있다.

4년 단임인 버지니아 주지사는 2021년 선거를 치르게 되는데 민주당 경선에서 최대 라이벌이 될 수 있고 예선을 통과하면 주지사에 당선될 가능성이 높은 후보들 중에는 마크 헤어링 주 법무장관과 저스틴 패어팩스 부지사가 포함돼 있다.

이번 버지니아 사태를 계기로 공화당측은 퍼플 스테이트(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이 왔다 갔다 해 민주의 파란색과 공화의 빨간색을 섞을 때 나오는 보라색, 퍼플 스테이트라고도 한다.)로 바뀐 버지니아를 재탈환할 절호의 기회로 삼으려 총력전에 나선 반면 민주당 측은 공든 탑을 무너뜨리지 않으려고 주지사 사퇴까지 앞장서 요구하고 있다.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버지니아 주정부 지도자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2020년 선거에서는 버지니아가 다시 레드 스테이트, 즉 공화당 텃밭이 될 것이 라고 예측했다. 공화당으로서는 오는 11월 버지니아 주 상원의원 40명, 주하원의원 100명 등 140명 전원을 새로 뽑는 주선거에서 민주당 맹추격을 주저앉히고 다시 버지니아를 아성으로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버지니아 주의회에선 공화당 텃밭이었다가 근년 들어 민주당이 약진해 현재 상원에선 21대 19, 하원에선 51대 49로 면도날 차이를 보이고 있는데 이번 사태로 민주당 약진이 꺾이고 공화당 우세가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내년 11월 대선과 총선에까지 여파를 미쳐 버지니아 정치적 색깔이 퍼플에서 레드로 다시 바뀌고 트럼프 대통령 재선과 공화당 의회선거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예측된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