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방예산안에 서명해 2차 셧다운을 피하자마자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새로운 국경장벽 투쟁에 나서 정치적, 법적 전면전에 돌입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오전 백악관 로즈가든 발표를 통해 "남부 국경에서 국가안보와 인도적인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면서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로즈가든 발표 직전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연방 상하원에서 압도적 표차로 통과한 연방예산 지출법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현 회계연도가 끝나는 9월말까지 모든 연방정부 부처의 예산지출이 확정돼 그때까지 더 이상 연방정부 셧다운, 부분폐쇄는 벌어지지 않게 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정부 문은 열어 놓고도 국경장벽에 대해선 또 다른 투쟁에 나서면서 초강수로 꼽히는 국가비상사태 카드를 끝내 사용한 것이다.

80억달러로 늘린 국경장벽 패키지

남부국경에 대한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지난번 35일간의 연방 셧다운 때부터 거론돼온 초강수지만 즉각 법적소송에 걸려 실제로는 예산전용과 장벽건설을 강행하지도 못한 채 여론만 악화된다는 공화당 내부의 반대가 심해 꺼내들기를 주저해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연방 셧다운은 피하는 대신 초강수를 꺼내 국경장벽 투쟁을 계속하겠다는 강한 의지와 전략으로 끝내 강행한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예산안 서명과 국가비상사태 선포, 행정명령 등으로 국경장벽 건설 예산을 지금까지 요구액인 57억달러 보다 23억달러나 늘린 80억달러 확보에 나섰다.

첫째 연방 셧다운을 피한 예산안 서명으로 13억7500만달러를 확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 민주 상하원 의원들이 자신의 요구액 57억달러를 일축하고 13억7500만달러만 배정했으나 2차 셧다운을 감수할 수는 없는 처지여서 마지못해 수용하고 예산지출법안에 서명했다. 그리고는 새로운 국경장벽 80억달러 패키지에 13억7500만달러를 포함시켰다.

둘째 국가비상사태를 공식 선포함으로써 의회 승인 없이도 국방부 군건설 예산에서 36억달러를 끌어다 육군 공병 등 미군들에게 장벽건설을 명령하게 된다.

셋째 불법마약 유입을 막기 위한 장벽건설을 내세워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국방부 마약차단 예산 25억달러와 재무부 몰수마약 자금 6억달러를 장벽건설에 사용하게 된다. 미국-멕시코 국경은 2000마일에 달하고 있다. 그 가운데 654마일 구간에는 이미 펜스나 차량 차단벽 등 어떤 형태로든지 국경장벽이 설치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했던 57억달러로는 200마일, 의회가 배정한 13억7500만달러로는 55마일에 펜스나 강철방벽 등을 설치할 것으로 계산돼 80억달러면 300마일 가량 구간에 장벽을 설치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즉각 정치적 투쟁에서 법적 투쟁으로 번지고 있다. 정치적 투쟁에서는 남부국경에서 과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만큼 국가안보위기 상황이냐는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남부국경을 넘다가 붙잡히는 밀입국자들은 최고치였던 2000년에는 한해 164만명에 달했으나 지난해에는 40만명 수준으로 급락했다.

위헌소송으로 법정 싸움 촉발

난민 망명을 신청하려는 캐러번 이민행렬이 몰려들고 밀입국자들도 한 달에 5만명으로 늘어났으나 이는 인도적 도전과제이지 국가안보 위기가 아니라는게 민주당 진영의 지적이다. 나아가 트럼프 초강수에 대해 민주당 진영에서는 즉각 법정 투쟁에 돌입했다. 민주당 진영 연방의원들과 주정부들, 시민단체들이 일제히 의회예산권 침해와 권한남용 등으로 위헌소송을 제기해 트럼프 대통령 예산전용과 국경장벽 건설 강행을 가로막겠다고 전면전을 선언하고 나섰다.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헌법 1조에 규정된 삼권분립, 입법부 권한을 침해하거나 무시하는 행동을 너무 자주 해왔다"며 법적투쟁을 선언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 국경장벽 패키지 80억달러 가운데 국가비상사태에 따른 36억달러 전용을 막기 위한 법정투쟁이 벌어지게 됐다. 법률전문가들은 진보성향의 연방지방법원에서 소송이 제기되면 트럼프 대통령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통한 예산전용과 국경장벽 건설은 곧 시행중지명령을 받아 수개월, 수년간 시행 되지 못할 수도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이 같은 사태를 이미 예견하고 법정 투쟁에 돌입한 것임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민주당원들은 진보적인 판사들이 있는 캘리포니아 등에서 소송을 제기하고 그곳의 연방지법과 샌프란시스코 소재 제 9연방항소법원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판결을 받아내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우리는 보수파가 우세한 연방대법원으로 가져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의 법적투쟁은 근년 들어 진보파들이 진보적인 캘리포니아 등에서 연방지법과 연방 항소법원까지 승소하고 결국 최종심인 5대 4 보혁구도가 굳어진 연방대법원으로 올라가는 추세를 보이 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지명한 닐 고서치, 브렛 캐버노 등 두 명의 보수파 대법관들에 의해 최종심에서는 자신이 승리할 수 있다고 보고 법정 싸움을 걸고 있다.

트럼프의 정치적 노림수, 재선용

트럼프 대통령 국가비상사태 선포와 이를 통한 80억달러 국경장벽 패키지 예산확보는 정치투쟁뿐만 아니라 법정싸움으로 분명 어느 곳에선가 제동이 걸려 제대로 시행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법적 투쟁이 아닌 정치투쟁, 선거용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왜 공화당내 특히 강경보수파들도 난색을 표시하거나 반대해온 국가비상 사태 선포 카드를 꺼내들었는지 정치적 노림수가 주목을 끌고 있다.

첫째 트럼프 대통령은 35일간 연방정부를 셧다운시키며 관철하려 했던 핵심 공약인 국경장벽건설 투쟁을 이번에는 연방 셧다운만 피하고 다른 초강수들을 총동원해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연방공무원들은 물론 미국인들로부터 지탄받아 정치적 역풍이 우려되는 연방정부 셧다운을 3주만에 또 강행할 수는 없었기 때문에 이를 9월말까지 장기적으로 피하는 대신 만지작거리던 국가비상사태 선포카드를 꺼내 또다른 국경장벽 투쟁을 시작했다는 해석이다.

둘째 지난번 셧다운 투쟁과 이번 예산투쟁에서 얻어내지 못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보수 강경파를 비롯한 지지층을 달래고 앞으로 결집시킬 새 투쟁무기로 국가비상사태 선포를 꺼내든 것으로 풀이된다.

셋째 각종 의회조사로 압박해오는 민주당 하원에 맞서 결코 밀리지 않겠다는 각오를 천명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하원은 러시아 스캔들은 물론 트럼프의 공개하지 않고 있는 세금보고 내역, 트럼프 가족들 재산까지 파헤치려는 위원회별 조사에 착수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여기서 밀리면 정말로 아무 일도 못하고 탄핵소리를 듣다가 결국 재선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을 느끼고 가능한 초강수들을 총동원해 밀릴 수 없는 전면전을 전개하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