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 변호사

비례대표제가 '전국구'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건 5·16 쿠데타 이후 실시된 1963년 제6대 총선이었다. 그런데 한국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게된 배경은 불온했다. 제도의 도입목적이 정치개혁이라기보다는 '정국의 안정'이라는 군부의 책략에서 연유했기 때문이다. 당시 국회의원 선거법에서 지역구 의석 1위 정당에게 최소한 전국구 의석의 1/2을 배분하도록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72년 유신헌법과 함께 잠시 사라졌던 '전국구'는 1981년 전두환·노태우의 신군부에서 부활한다. 신군부조차도 유신헌법에서 규정한 대통령이 지명하는 국회의원(유정회) 제도를 그대로 둘 수 없었던 탓이다. 그러나 '정국의 안정'은 신군부에게도 필요한 일이었고, 결론적으로 부활한 전국구는 여전히 괴이했다.

1981년 제11대 총선·1985년 제12대 총선에서는 지역구의석 제1당에게 무려 전국구의석의 2/3을 몰아줬고,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도 지역구의석 제1당에게 전국구의석의 1/2을 몰아줬다. 이뿐만 아니라 당시 후진적인 정당문화도 비례대표제의 오염을 가속화했다. 제왕적 총재의 낙점으로 상징되는 공천의 비민주성과 불투명성은 오늘날의 미세먼지보다 짙었고, 전국구 공천의 암묵적 대가로 정치헌금이 오고간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비례대표제 전면폐지 주장은 위헌성 높다

한국의 오염된 비례대표제가 비교적 정상화된 것은 2004년 제17대 총선이었다. 2001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지역구 투표율에 따라 전국구 의석을 배정하던 방식이 사라지고, 지역구 투표와 비례대표 투표를 분리한 1인 2표제가 도입된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전문성을 갖춘 신진 정치인과 사회적 소수자를 대변하는 의원들이 국회에 등장하고, 민주노동당과 같은 진보정당이 국회에 진출한 것도 이때다. 아울러 비례대표 명부에서 여성을 절반 이상 추천하도록 의무화한 것도 제17대 총선이었다. 이때서야 여성의원 비율이 처음으로 10%를 넘어섰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재도 현역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박영선 김현미 김영주 유승희 나경원 심상정 의원은 모두 제17대 총선에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케이스다.

비례대표제는 우여곡절 끝에 제자리를 찾아갔지만, 비례대표에 관한 국민의 냉소적 시선은 여전히 가시질 않았다. 지난 3월 10일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비례대표제 전면폐지'를 제안한 것도 이와 같은 대중적 반감에 기초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비례대표제 전면폐지' 주장은 그 정치적 호오(好惡)를 떠나 위헌성이 높은 방안이다. 비례대표제가 처음 도입했던 1963년 당시에 헌법에는 '국회의원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었을 뿐이고, '전국구'는 국회의원선거법을 통해서 실시되었다. 반면에 현행 헌법은 "국회의원의 선거구와 비례대표제 기타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제41조 제3항)고 규정하고 있다. 1963년 헌법과 달리 '비례대표제'가 헌법에 명시된 것이다.

이처럼 헌법조문이 변경된 점에 비추어 보자면 현행 헌법에서 비례대표제 폐지는 개헌사항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자유한국당에서는 비례대표제 전면폐지가 법률개폐사항에 불과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해석론을 뒤집으면 '지역구 전면폐지 및 전면적 비례대표제 도입' 또한 개헌 없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헌법의 취지가 이러한 가능성을 내포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오히려 '지역선거구'와 '비례대표제'의 혼합선거제도의 채택이 헌법개정권력의 뜻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성 있는 해석이다.

폐지 아닌 바람직한 개혁방안 필요

현재의 비례대표제는 폐지가 아니라 바람직한 개혁방안이 필요하다. 특히 '공천의 민주성과 투명성'을 확보하는 구체적 방안이 가장 필요해 보인다. 비례대표 정당명부 작성과정에서 제왕적 공천을 배제하고 당원 직선 등을 의무화하거나, 유권자의 의사가 직접 반영되는 개방형 비례명부제 방식이 검토 되어야 할 이유다.

자유한국당은 부디 반-정치의 정서를 악의적으로 활용한 '비례대표제 전면폐지'같은 위헌적 주장보다는 조금 더 진정성 있는 개혁방안을 고민해주길 바란다. 법조인이자 비례대표 출신인 자유한국당 나경원 원내대표가 필자가 제기한 쟁점들을 모두 잘 파악하고 있으리라 믿고 있기 때문에 하는 당부이다.

김준우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사무차장 /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