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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신문

'미국 우선(America First)' 연준, '최종대부자(Lender of Last Resort)' 역할을 할까

로이터통신

등록 : 2019-04-15 11:28:37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퍼질 때,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는 비상조치를 단행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달러 경색에 신음하며 도움을 청할 때, 연준은 재빨리 '통화스와프'를 승인했다. 덕분에 해외 금융시장의 유동성 경색은 상당히 완화됐다. 연준이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든든한 버팀목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였다.

하지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로 바뀔 우려가 있는 연준이 다가올 위기에도 그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의문이 글로벌 경제금융 수장들, 각국 중앙은행들에게 갑자기 중요해지고 있다고 영국 로이터통신이 15일 전했다. 이유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연준 위원 후보들을 임명하려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천거한 경제 평론가 스티븐 무어와 기업가 허먼 케인은 연준의 정책기조에 비판적이다. 특히 무어 후보는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한 경제침체 때 연준이 경제를 안정화하기 위해 취한 비상조치를 강하게 비판하는 인물이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정책을 충실히 수용하는 연준을 만든다면, 달러 의존도가 높은 글로벌 금융시스템의 지형을 뒤흔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유럽중앙은행(ECB) 마리오 드라기 총재는 최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 춘계 연차총회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며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중앙은행(연준)의 독립성이 그렇다"고 걱정했다.

주요 국가들 간의 무역전쟁으로 전 세계 경제가 가뜩이나 민감한 때 트럼프 대통령은 정치적 뜻을 공유하는 인물을 연준에 임명했다. IMF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지난주 회원국에게 "다른 이들에게 해를 끼쳐선 안된다"고 요청했다. 하지만 IMF의 최대 주주인 미국이 가장 큰 걱정거리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속하는 무역전쟁은 글로벌 경제 성장이 둔화하는 이유로 거론된다. 그가 미국의 대선 일정을 눈치보게 될 인물들을 연준에 임명하려 하자 다른 나라 중앙은행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준금리를 인하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무어 후보자는 그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지지하고 있다.

한 나라 중앙은행이 취한 조치는 다른 나라 경제에 영향을 준다. 연준이 미국의 경제둔화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하한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경제실적은 돋보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다른 나라들에겐 큰 피해가 될 수 있다.

미국의 기준금리가 낮아지면 달러가치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미국의 수출과 제조업 일자리를 늘리게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자들에겐 더 할 수 없는 선물이다.

하지만 일본중앙은행이 장기채권 수익률 목표치를 맞추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ECB가 부양하려는 유럽의 경제성장률도 큰 타격을 입는다. 신흥국 역시 달러 흐름의 불안정성에 직면하게 된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인 제이콥 펑크 키르케고르는 "정치색이 짙어질 연준이 2008년 당시의 최종대부자 역할을 되풀이할 것인가"라며 "연준은 금융시스템 안정화에 가장 강력한 지지자였다. 하지만 갑자기 가장 불안정한 요소가 됐다"고 지적했다.

이미 트럼프 행정부가 달러중심 금융시스템을 무기로 이란핵합의나 러시아의 대유럽 가스관 사업 등에 영향을 미치려 하자, 유럽의 경제금융 리더들은 유로화를 기축통화로서 부양하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상황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달러가 과도한 영향력을 갖게 되면서 유럽이 미국의 정치적 결정에 좌우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물론 무어와 케인은 아직 공식적으로 임명된 게 아니다. 게다가 케인이 임명될 전망은 낮은 상태다. 연준 이사가 되려면 미 상원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여당인 공화당조차 케인에 대해 반대입장을 밝히고 있다.

무어의 정책적 입장에 대해선 엇갈린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는 대체적으로 금융위기 이후 연준이 금융시장에 달러를 주입한 것에 비판적이다. 그는 연준을 엄격한 규정에 묶어두는 방안을 선호한다. 또 금과 같은 원자재 가격에 달러가치를 연동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진지한 입장이다. 엄격한 통화정책을 비판하는 측에서는 '예상치 못한 위기에 대응하는 유연성이 부족해진다'고 지적한다.

이전에도 연준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때가 있었다. 가장 확연한 때는 1980년대였다.

연준 통화정책 부서장을 지냈고, 현재는 예일대 교수인 윌리엄 잉글리쉬는 "당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정치적으로 지지하는 연준 위원들이 폴 볼커 의장의 통화정책에 강력 반대했다"고 말했다.

잉글리쉬 교수에 따르면 대통령을 추종하는 이들의 반란은 성공하지 못했다. 기술관료적 성향이 강한 연준엔 의장의 영향력이 개별 위원의 영향력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다. 또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엔 최대 19명의 위원이 들어간다. 그중 12명은 대통령의 입김이 미치지 못하는 지방의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이었다.

하지만 볼커 의장 이전 연준은 대통령의 의중을 반영한 정책을 펴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린든 존슨,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의 연준이다. 1970년대 미국의 고삐풀린 인플레이션이 그로부터 연유했다는 지적도 많다.

잉글리쉬 교수는 "정치적으로 편향된 연준을 실험해봤다. 그 결과는 끔찍했다"고 말했다.

IMF 등 글로벌 금융기구에겐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전 세계 최대 규모 경제국인 미국이 다른 나라들은 지키는 규범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미 무역 부문에서 그같은 행동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재정건전성을 팽개치고 거침없이 빚을 내거나 중앙은행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를 만들수록, 경제적 회복탄력성이 부족해 고군분투하는 다른 나라들도 미국의 선례를 따르고픈 유혹에 시달리게 된다.

미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을 지냈고 현재는 PGIM 채권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네이선 쉬츠는 "IMF는 모든 회원국이 공평하게 대우받는 세상에서 살고자 한다"며 "만약 미국이 연준을 당파정치에 내던지거나 또는 다른 나라들이 지키는 기준을 나몰라라 한다면, 결국 미국 자체에게 큰 리스크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은광 기자 powerttp@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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