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법 시효 종료, 연간 2조원 재원부담 논란 … 고교 무상교육 이어 2라운드

무상교육 관련 예산을 둘러싸고 정부와 시도교육청이 잇달아 힘겨루기를 벌이고 있다. 고교 무상교육 재원 마련 방안에 이어 이번에는 연간 2조원에 달하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재원 마련 책임소재를 놓고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교육부와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의회) 등에 따르면 2017년 1월 시행된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법'의 효력이 12월 31일로 만료된다. 이 법은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지원 등 누리과정 예산을 정부가 부담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4회 교육자치정책협의회가 열렸다. 이날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는 어린이집 무상보육 비용까지 교육청이 부담하도록 한 유아교육법과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등의 개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명확한 답을 내놓지 않았다. 사진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제공


누리과정은 만 3~5세를 대상으로 어린이집과 유치원 구분 없이 동일한 내용을 가르치도록 하는 교육·보육 통합과정이다. 누리과정을 도입한 공립유치원과 사립유치원은 물론 어린이집도 정부로부터 교육비를 지원받는다.

법률상으로만 보면 정부는 내년부터 더 이상 누리과정 예산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이에 교육부와 교육감협의회는 15일 열린 '제4차 교육자치정책협의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했다. 교육감들은 유아교육법과 영유아보육법 시행령 등의 개정을 요구했다. 현행 법령은 어린이집 무상보육 비용까지 교육청이 부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 관할인 어린이집까지 교육청 예산으로 지원할 수 없다는 것이 교육감들의 입장이다.

앞서 정부는 누리과정을 도입하면서 그 재원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부담하도록 했다. 시도 교육청 입장에서는 중앙정부의 정책에 의해 새로운 지출이 늘어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누리과정 비용 부담 주체를 놓고 자체 예산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정부와 전액 국고로 지원해야 한다는 시도 교육청이 맞섰다.

논란은 '유아교육지원특별회계법'을 제정된 후 일단락됐다. 현재 연간 2조원에 달하는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전액 정부가 부담해왔다.

이날 교육부는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교육부는 회의 결과 자료에서 "교육감 협의회의 총회 의결 사안을 확인했다"고만 밝혔다.

단순히 시행령 개정만의 문제가 아니라 누리과정 예산에 대해 종합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교육부 입장이다. 현재 기획재정부·보건복지부 등 관계부처와 협의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교육감협의회도 입장자료를 내고 "누리과정 관련 법령 개정 등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해 차후 회의에 재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김승환 교육감협의회장(전북교육감)은 "유아교육특별회계법이 올해로 만료되면 누리과정 논란이 재연될 가능성이 우려된다"며 "과거 교육부와 시도교육청은 불신의 관계였는데,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직 신뢰를 말하기에는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문재인정부 출범 후 무상교육 재원을 둘러싼 정부와 교육감협의회 간 이견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정부, 여당, 청와대가 당정협의회를 열고 '고교 무상교육 예산을 중앙정부와 시도교육청이 절반씩 부담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하자 교육감들이 반발했다.

이들은 입장문을 내고 "전국의 교육감들은 고교무상교육 완성을 위해 협력할 것"이라면서도 "재원 마련에 대해 수차례 재정당국에 대화를 요청했으나 충분한 협의와 설득없이 교육청에 부담을 지우는 방식으로 결정한 것에 유감"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재원 부담을 교육청에 떠넘기는 것은 온당치 않으며 정부가 온전히 책임지는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면서 "고교 무상교육이 완성되는 때까지 지방교육재정 교부율 인상을 포함한 안정적 재원 대책을 제시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시도교육청들의 속내는 한마디로 '부글부글' 끓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교 3학년 만을 대상으로 하는 올해 2학기에만 교육청들은 약 4066억원의 예산을 투입해야 한다. 2학년까지 확대되는 내년에는 1조4500억원, 전체 무상교육을 실현하는 2021년에는 약 2조736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추산됐다.

그동안 교육당국과 재정당국은 재원조달 방법에 대해 다른 입장을 보여왔다. 교육부와 교육청은 내국세의 20.46%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 비율을 21.26%로 0.8%p 이상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기재부는 세수가 충분하고 향후 학령인구가 줄어들기 때문에 현재 수준으로도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번 결정도 재정당국 논리가 먹혀든 결과다.

한 시도교육청 고위관계자는 "교육감들이 교육개혁과 초중등교육 지방 이양을 추진하는 현 정부를 대놓고 공격하기 힘들어 말을 아끼고 있을 뿐"이라며 "빠듯한 예산사정으로 어려움을 겪는 시도교육청에 부담을 전가하지 않을 방안을 제시하지 않으면 마찰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난 정부에서 누리예산과 관련한 논란이 일었을 때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국가책임을 주장했다"고 강조했다. 또 고교부상교육 재원 배분 문제에 가장 반발했던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17일 기자간담회에서 "국회에서 교부금 관련 논의를 하고 있는 만큼 정부 부담 예산이 상향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부금 비율 상향 조정 등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갈등이 재점화될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장세풍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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