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목표 만들어 성취감 느끼도록 … 전기차와 수소차는 O X 문제 아냐

임태원 현대자동차 미래혁신기술센터장은 수소연료전지차 분야 국내 최고 전문가다. 임 센터장은 1998년 현대차가 수소연료전지차 개발에 착수한 이래 2013년 세계 최초 양산에 성공하기까지 이 분야 리더로 활동했다.

그는 제대로 된 생산설비조차 없던 실험실에서 다른 연구원들과 시행착오를 겪으며 연구에 매진, 핵심기술을 자체 개발했다. 또 국내 산업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도 20여개 대학 및 300여개 부품회사를 참여시켜 핵심부품 90% 이상을 국산화했다.

최근에는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9 포스코청암상 기술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지난 17일 현대차 의왕연구소에서 임 센터장을 만났다.

■ 20여년전인 1998년부터 수소차 개발에 나섰는데, 계기가 있었는지

그보다 앞선 1980년대 말에는 전기차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전기차 주행거리(배터리), 가격, 충전소 등의 한계에 부딪혀 양산에 실패했다. 연구 인력도 뿔뿔이 흩어졌다.

이후 GM 도요타 벤츠가 수소차 개발에 나선 걸 보면서 '우리도 해봐야하는 것 아닌가'라는 도전의식이 생겼고, 최고경영진의 전폭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시작했다. 전기차 개발경험도 큰 시드(seed, 씨앗)가 됐다.

수소차 개발과정이 여타 친환경차와 다른 점은 여러 기관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협력해왔다는 점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와 자동차업체 정유회사 환경단체가 힘을 합쳐 충전기나 탱크 등 비경쟁 분야에서 협력했다.

현대차도 함께 했다. 우리는 2006년 전후만 해도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였지만 지속적인 혁신과 연구개발로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시장 개척자)가 됐다.

■ 2013년 세계 최초로 수소차 양산에 이르기까지 약 15년이 걸렸다. 어려운 점도 많았을텐데 어떻게 극복했나.

선행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일이다. 추격해야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자칫 느슨해지거나, 목표가 흐릿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중간 중간 목표를 만들어 직원들이 끊임없이 성취감을 느끼도록 했다. 그러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한결 수월하다. 경쟁사 제품과 성능비교도 쉬지 않았다.

1대당 제조비 2억~3억원인 차량 34대를 미국으로 보내 다양한 필드테스트를 통해 문제점을 잡아내고 하나하나 보완해 완성도를 높여나갔다.

정부정책이 일관되지 않아 수소차 개발에 어려움이 있던 게 사실이지만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은 큰 도움이 됐다.

■ 미래 친환경차를 둘러싸고 전기차가 대세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전기차와 수소차의 공존가능성이 얼마나 있다고 보는지

전기차와 수소차는 O, X 문제가 아니다. 전기를 만들 때 석탄만 원료로 쓰는 게 아니라 천연가스 원자력 신재생에너지를 두루두루 사용하지 않나. 앞으로 어떤 한 차종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전기차도 필요하고, 수소차도 필요하며, 일부 지역에는 내연기관차가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리튬이온배터리만으로는 전기차 주행거리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250~300㎞를 달릴 땐 전기차가 유리하고, 그 이상 주행할 땐 수소차 장점이 더 많은 식이다.

또 소형차는 전기차가 적합하지만 대형차나 상용차는 수소차가 알맞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지금까지 휘발유차와 경유차가 공존해왔던 것처럼 전기차와 수소차도 함께 갈 것이다.

■ 전기차 보급 확대의 가장 큰 장애요인을 배터리 문제로 보나.

전기차의 당면과제는 충전문제보다 가격이라고 생각한다. (전기차 배터리인 리튬이온배터리는 약 500회 충전하면 성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배터리 가격의 60%가 재료비다. 가공비는 20%밖에 안 된다. 이는 50만대, 100만대 대량생산을 해도 차량가격을 인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고객들은 아직 아무리 친환경적이라고 해도 정부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발 벗고 나서 구매하지 않는다. 테슬라 전기차가 매분기 8만~9만대씩 판매하다가 올 1분기 6만대로 급감했다. 정부보조금이 감소한 것과 무관치 않다.

■ 한국이 수소차 리더 위치를 공고히 하려면 어떤 부분이 보완돼야 한다고 보나.

음식점을 예로 들어보자. 유명 맛집을 흉내내면 어느 정도 단계까진 빨리 도달할 수 있겠지만 더 이상 성장하기 어렵다. 원조집이 되려면 특별한 레시피가 필요하다.

이처럼 수소차 분야에서 기초기술, 기반기술에 대한 선행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소재기술 개발과 수소연료전지 촉매인 백금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개발이 요구된다. 현재는 차 한 대당 백금 40~50g이 필요한데, 이를 10~20g으로 줄일 수 있느냐 등이 관건이 될 것이다.

■ 현대차 미래혁신기술센터는 요즘 어느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나.

지금까지 자동차산업은 고객에게 자동차를 팔면 그걸로 끝났다. 하지만 이젠 모빌리티(Mobility) 서비스 시대다. 스마트폰의 경우 단말기에서도 매출이 발생하지만 여러 가지 앱으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수익이 발생하지 않나.

우리 센터는 현대차그룹의 지속성장을 위해 미래기술 진화방향을 예측하고 기반기술을 내제화한다. 뿐만 아니라 자동차가 갖고 있는 우위기술을 활용해 다른 연관 산업으로 확대·발전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연구한다.

카쉐어링 서비스 등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고, 필요 시 기술적 백업(back-up)에 나선다.

수소연료전지의 경우, 처음에는 자동차 상용화만 신경썼는데, 분산발전을 통해 비상전원으로 활용할 수 있고, 수소기차나 수소선박 시장도 열린다.

전기차 배터리가 향후에는 큰 환경문제가 될 수 있다. 따라서 폐배터리를 다른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도 찾아보고 있다. 미래 에너지 사회의 산업적 기반이 될 차세대 배터리와 연료전지 가격 저감, 성능 및 내구향상을 통한 혁신소재 개발에 노력하고 있다.

■ 인터뷰를 위해 방에 들어오자마자 '혁신=핵심기술×통찰력×실행', '기하급수적 변화에 대비하라', '직관보단 데이터가 빠르다'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

현대사회는 빛의 속도로 변화하며,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혁신은 핵심기술이 토대가 돼야 한다. 통찰력이 없으면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 걸어주기 십상이고, 실행하지 않는 기술이나 지식은 쓸모가 없다. 또 엔지니어는 데이터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다. 커뮤니케이션을 데이터로 해야지 머리나 말로만 할 수 없음을 강조한 것이다.

■ 연구·개발분야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최근 마스터즈 골프대회에서 오랜 슬럼프를 딛고 우승한 타이거 우즈는 "Never give up, Keep Challenge(절대 포기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라)"라는 말로 우승소감을 밝혔다. 직장생활을 하다보면 상사나 동료 때문에 힘든 일이 생길 수 있고, 기술적 한계에 부딪혀 포기하고 싶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또 예상치 못한 어려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며 도전하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을 것이다.

■ 청암상 수상금 2억원 전액을 모교인 연세대에 기부했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텐데

자동차는 산업 특성상 혼자 연구하고 개발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우리 회사를 비롯해 이 분야에서 일하는 100명 이상의 많은 동료들과 함께 노력했고, 대표로 상을 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개인적으로 쓰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되돌아보면 수소전기차를 개발하면서 필요했던 지식과 공학자로서의 마음가짐, 융합적 사고는 대학 생활에서 배웠다. 젊은 인재들이 경제적 걱정없이 수소연료전지나 친환경기술을 꾸준히 공부해 산업계로 유입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기부를 결심했다.

앞에선 일본이 저만큼 치고 나가고, 뒤에선 중국이 빠르게 뒤쫓아 오는데, 우리는 아직도 패스트 팔로어를 견지하는 분위기가 많다. 이젠 기술리더가 되어야 한다.

[관련기사]
현대차 '수소로 밝힌 미래 이벤트'

이재호 기자 jhlee@naeil.com

이재호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