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날로 바꾸자' 국민청원 확산 … 교육계 최우선 과제는 '교권확립'

경남 남해 상주중학교 학부모들은 꽃을 선물하지 않았다.

법에 걸리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선생님들 이름을 적은 현수막을 교문에 걸고 교사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경남 상주중학교 교문에 걸린 현수막 학부모들이 스승의날을 맞아 카네이션 대신, 감사의 글과 교사 이름을 적은 현수막을 학교 교문에 걸었다. 사진 상주중학교 제공

서울 한 중학교 교장은 "스승의 날이 우울하다"고 말했다. 제자들이 카네이션 한송이 달아줄 수 없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카네이션(생화)을 뇌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다만 종이나 헝겊으로 만든 조화는 가능하다고 규정했다. 교원들은 자존감을 떨어뜨리는 규제라며 정부 규제가 인간의 마음이나 정성까지 재단하고 나섰다며 씁쓸해 했다.

대구 한 초등학교 수석교사는 "학교에서 촌지가 사라진지 20년이 넘었음에도 학교를 비리의 온상처럼 규정하고 있다"고 불편한 심기를 들어냈다. 이어 "하필 스승의 날을 전후로 공직기강 확립 이라는 이름을 걸고 특별복무점검을 실시하거나 감찰활동을 강화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2016년 국민권익위는 '종이카네이션은 되지만 생화는 안 된다'고 규정했다. 교사들은 '모멸감을 주는 행위'라며 정부를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14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가 스승의 날을 맞아 발표한 교원대상 설문조사 결과도 참담했다. 교원 87.4%가 '사기가 떨어졌다'고 답했기 때문이다. 이는 역대 최고치로 10년 새 32%가 증가한 수치다. 설문조사에서 교원들은 최우선 교육과제로 '교권확립'을 꼽았다. 교직생활 중 가장 큰 고충은 '학부모 민원'이라고 답했다. 교원들의 사기 저하는 교권하락으로 이어지고 다시 학교교육과 학생지도에 '냉소주의' '무관심' 등 악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교사노동조합(서울교사노조)도 교사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학부모의 비합리적인 민원'이 42.1%로 가장 높았고, '교사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학생들의 언행'이 23.7%로 나타났다. '행정직의 행정업무 기피(교사에게 업무 떠넘기기)'가 14.5%, '관리자(교장, 교감)의 독단과 전횡 등의 비민주적인 학교운영'이 13.9%로 뒤를 이었다.

유치원 교사의 경우 '행정직의 행정업무를 교사에게 떠넘기기'(50.0%)를, 초등교사는 '학부모의 비합리적인 민원'(52.8%)을, 중학교와 고등학교 교사는 '교사를 무시하고 괴롭히는 학생들의 언행'(35.0%)을 1순위로 꼽았다. 교사들이 느끼는 민원의 공통분모는 교권침해다.

최근 5년간 발생한 교권침해는 1만5105건에 달했다. 학부모와 학생이 교사를 폭행하거나 성희롱 및 성폭행하는 사건이 급증했다. 폭행 사건의 경우 2014년 86건에서 2018년 165건으로 5년 새 2배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성범죄도 80건에서 180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진만성 교총회장 직무대행은 "교권확립을 위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며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교원들의 지위를 높이고 부당한 간섭과 폭력에서 벗어나 교육의 본질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교원 권리보호 법률안 발의 = 박찬대 국회 교육위원회(더불어민주당 인천연수구 갑)의원은 14일 교원의 권리보호에 관한 법률적 규정명시를 위한 '초·중등교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발의 했다. 박 의원은 교원의 권리에 대해서 헌법에 명확하게 명시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교원이 교육활동에 대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법안을 개선해야 한다고 취지를 설명했다. 교권침해로 교원들의 자존감이 추락하고, 명예퇴직자가 증가하고 있는 점을 법률안 개정 원인으로 꼽았다.

개정 법률안은 학생의 인권보장과 마찬가지로 제21조의2(교원의 권리 보호)항을 신설하도록 했다. "학교의 설립자·경영자와 학교의 장은 교원의 교육활동 보호 및 인권 보장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조항을 명시했다. 실제 올해 2월말 교사 명예퇴직자는 6019명으로, 2017년 3652명보다 65%가 늘었다.

'스승의 날'을 폐지하고 '교사의 날'로 바꾸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늘고 있다. 교육의 본질과 맞지 않는다는 여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14일 교사 단체인 전국중등교사노동조합은 '스승의 날을 법정기념일에서 제외하고 민간기념일로 전환해달라'는 요청을 유은혜 부총리에게 주문했다. 교사들에게는 학부모나 제자가 부담을 져야 하는 '스승의 날'보다 교사의 전문성과 지위 향상을 위해 '교사의 날'이 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교사모임 단체들도 "다른 법정기념일들과 달리 스승의 날만 '스승'을 특정하고 있어 부담감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스승의 날은 1963년 5월 26일 청소년적십자중앙학생협의회가 교원의 사기진작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위해 지정했다. 이후 1965년에 5월 15일로 날짜가 변경됐고 폐지를 거쳐 1982년 다시 부활시켰다. 정부와 교총에서 추진하는 '대한민국 스승상'도 '대한민국 교육상'으로 이름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여태전 경남 상주중학교 교장은 "진정한 스승은 스스로 스승이라 부르지 않고 남이 스승이라 불러도 손사레를 칠 것"이라며 "카네이션 한 송이도 기쁘게 달 수 없는 모든 교원들의 마음을 정부와 학부모들이 헤아려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전호성 기자 hsjeo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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