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화물선 압류 쟁점화

외무성 대변인 대미비난

미 정부 "언급할 게 없다"

북한이 미국의 자국 화물선 억류를 "날강도적 행위"라 비난하며 송환을 요구한 것과 관련, 미국 정부가 내놓을 답변이 없다며 대응을 자제했다.

미 국무부는 14일(현지시간) 북한이 자국 화물선 '와니즈 어니스트'의 송환을 요구한 데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에 "언급할 사항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고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했다. RFA는 같은 질의를 받은 미 국방부도 "논평을 거부한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앞서 미 법무부는 지난 9일 금수품목인 북한산 석탄을 불법 운송하는 데 사용돼 대북제재 결의 위반 혐의를 받는 북한 화물선 '와이즈 어니스트'호에 대한 몰수 소송을 제기했고, 선박 압류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북한은 14일(한국시간) 외무성 대변인 담화 형식을 통해 강력 반발했다. 외무성 대변인은 "미국의 이번 처사는 '최대의 압박으로 우리를 굴복시켜보려는 미국식 계산법의 연장"이라며 "새로운 조미관계 수립을 공약한 6.12조미공동성명의 기본 정신을 전면부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대변인은 특히 "미국은 저들의 날강도적인 행위가 금후 정세발전에 어떤 후과를 초래하게 될 것인가를 숙고하고 지체 없이 우리 선박을 돌려보내야 할 것"이라며 "우리는 미국의 차후 움직임을 예리하게 지켜볼 것"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란 형식으로 대미 비난에 나선 것은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 이후 가장 수위가 높은 것이다. 그간 북한은 주로 최선희 제1부상이나 미국담당 국장, 미국연구소 정책연구실장 등 외무성 고위인사를 내세워 조선중앙통신 기자와의 문답 형식으로 대미 비난을 해왔다.

대변인은 "미국이 제 마음대로 세상을 움직이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으며 미국식 '힘'의 논리가 통하는 나라들 속에 우리가 속한다고 생각했다면 그보다 더 큰 오산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저들의 국내법을 다른 나라들이 지킬 것을 강박하고 있는 미국의 후안무치한 행위야말로 주권국가는 그 어떤 경우에도 다른나라 사법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보편적인 국제법에 대한 난폭한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처럼 공식적인 형태로 강하게 반발한 것은 이번 선박 압류 사건이 추가 제재 등 미국의 대북 제재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날카로운 반응에 미국 정부가 일단 묵묵부답으로 대응하는 것은 협상의 판을 유지하면서도 대북제재·압박을 강화해 북한의 결정적 양보를 받아내겠다는 그간의 정책기조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하노이회담을 기점으로 일괄타결식 빅딜 요구를 던진 뒤 "시간을 서두를 것 없다"는 속도조절론을 앞세우면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전선을 관리하는 전술을 취하고 있다.

와이즈어니스트호는 북한과 시에라리온 국정으로 이중 등록된 선박이다.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패널은 올해 초 공개한 연례보고서를 통해 북한산 석탄 2만5000톤 가량을 실은 이 배가 지난해 4월 1일께 인도네시아 당국에 의해 억류됐다고 밝혔다.

미국은 이 선박을 인도네시아로부터 넘겨받아 압류했으며 11일 미국령 사모아의 수도 파고파고 항구에 예인했다.

김상범 기자 clay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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