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의회 명운 달린 법안, 국회에 막혀

의원 전원발의 자정결의안 채택, 혁신 실천

"일할 기회 주고 책임 물어야"

"국회 파행으로 가슴이 답답한 건 대통령과 청와대만이 아닙니다. 지방의회 명운이 달린 법안들이 국회 통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방의회가 제대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책임도 제대로 물을 수 있습니다."

신원철 의장은 도시관리위원장(8대), 지방분권 TF단장(9대) 등을 거쳐 제10대 서울시의회 전반기 의장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 서대문구에서 3번째 시의원에 당선됐다. 사진 서울시의회

신원철(사진) 서울특별시의회 의장은 "국회가 하루빨리 정상화 돼 지방의회의 앞날을 열어주기 바란다"며 이같이 말했다. 국회에 제 역할을 촉구하는 만큼 서울시의회 차원의 혁신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서울시의회는 최근 신 의장 주도로 110명 시의원 전원이 공동발의한 '자정결의안'을 통과시켰다. 공무국외연수, 정책지원 인력 채용 등에 정부 권고안을 훨씬 상회하는 엄격한 윤리 기준을 적용했다. 그 결과 지난달 열린 올해 첫 국외연수 심사에서 서울시의회 사상 최초로 연수 계획이 부결되기도 했다.

서울시의회 자정결의안은 타 지방의회는 물론 정치권의 주목도 받고 있다. 국회에서도 "이대로 실천된다면 '국회가 지방의회만도 못하냐'며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신 의장과 서울시의회는 자정결의안을 통해 배수의 진을 쳤다. 결의안에 따르면 앞으로 시의회는 법 통과로 정책지원인력(의원 의정활동을 지원하는 보좌관제도)을 채용할 수 있게 되더라도 국회처럼 의원이 임의로 직원을 채용할 수 없도록 했다. 의원이 아닌 의회가 보좌관을 뽑는 방식으로 공개 채용하게 된다. 수시로 논란이 된 국회의 친인척 채용 문제도 근본부터 뿌리뽑기로 했다. 시의원의 친인척 채용을 배제하는 것은 물론 채용절차를 법제화해 국회와도 차별키로 했다.

의원 겸직과 관련해서도 겸직 신고 내용 공개, 겸직 신고 위반 시 징계규정 도입 등 내용을 담아 부정·유착 및 의원직을 사업에 이용할 가능성을 차단키로 했다. 이 외에도 출석률, 조례발의 건수, 공약이행 실적 등 의정활동을 투명하게 공개하기로 했다. 특히 '예산심의 계수조정 공개'는 괄목할만한 조치로 꼽힌다. 시민들에는 다소 낯선 단어지만 예산심의 계수조정은 나쁜 방향으로 흐를 경우 예산 사유화의 결정판이 된다. 시민 감시가 미치지 않는 곳에서 의원들끼리 민원성 지역 예산을 짬짜미로 나눠 갖는 행위를 말한다. 이는 행정안전부가 지방의회에 제안한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며 국회와 비교했을 때도 한층 강화된 내용으로 평가된다.

■시의원 공천권은 사실상 국회의원이 쥐고 있다. 국회 압박 강도가 높은데

부담이 없진 않다(웃음). 하지만 인사권, 정책지원인력 등 지방의회 발전의 명운이 걸린 지방자치법 전부개정안의 중요성을 생각할 때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국회에만 요구하는 게 아니라 우리부터 강도 높은 혁신안을 만들고 실천하고 있다. 적은 인원이지만 야당 의원까지 모두 참여해서 만든 자정결의안은 그래서 의미가 있다.

■정책지원인력 채용은 국회의원들이 탐탁치 않게 여긴다는 말이 있다.

서울은 그나마 공감대가 있다. 한 해 42조원이 넘는 서울시 예산을 의원 한 사람이 분석, 감시하라는 건 사실상 부실한 감시를 방치하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방은 사정이 다르다. 국회의원이 중앙 활동 때문에 지역구 관리를 아예 지방의원에 맡기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정책지원인력을 보유하게 되면 주민 접촉도 뿐 아니라 정책검증능력도 향상된다. 한마디로 미래의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지방의원들이 급성장하는 것을 원치 않는 풍토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법안이 통과되지 않으면 지방의회 발전의 결정적 기회가 사라진다. 국회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다는 의견도 있다.

국회의원이 지방의원 공천에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건 맞다. 하지만 근본적인 공천권, 나아가 선출권은 결국 국민(주민)에게 있다. 세상이 변했다. 정치권끼리 자리를 나눠 갖는다는 발상을 바꿔야 한다. 지방의회는 생활 현장의 민의를 모으고 중앙 정치는 이를 입법 근간으로 삼는 등 짬짜미가 아닌 협력과 공조, 지속적 혁신으로 국민 마음을 얻어야 한다. 자치분권·균형발전이 대한민국 성장동력임을 기억하고 국회가 적극적으로 법 통과에 나서주길 기대한다.


신 의장은 박원순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에 대해 기계적 비판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 박 시장이 민생과 복지를 위해 누구보다 고민이 앞선 리더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제로페이에 너무 치중한 민생 정책에는 문제를 제기했다. 버스 파업, 택시-카풀 대립, 주 52시간 대비, 최저임금 여파 등 다양한 민생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서 제로페이 외에도 더욱 혁신적인 민생정책들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는 "새롭고 혁신적인 민생정책들이 논의된다면 시의회도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법·제도적 지원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의회는 최근 미세먼지 감축에도 서울시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시민들이 미세먼지를 최고의 재난으로 꼽고 있는 만큼 의회도 당연히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판단이다. 서울시가 박 시장 주도로 미세먼지 재난컨트롤타워를 설치하고 미세먼지 종합대책을 발표한 데 이어 서울시의회는 지난달 19일 환경수자원위원회 산하에 미세먼지 대책 소위원회를 구성했다.

신 의장은 "이제 시민들은 거창한 이야기가 아닌 생활 속 불편과 내 삶에 작지만 구체적 변화를 가져다 줄 정책을 원한다"며 "미세먼지소위를 특별위원회로 전환하는 등 시민 생활을 바꾸는 문제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차염진 이제형 기자 brother@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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