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동 여경’ 논란 바라보는 현장 여경들 “솔직히 힘 빠지더라”

“체력기준 자격제로 남녀경찰 채용하는 해외사례 고려해봐야”

“미성년자 성매수나 부정부패같은 남성 경찰들의 비리나 비행이 논란이 됐을 때 남자 경찰 뽑지 말자는 이야기가 나온 적 있나요? 대림동 여경의 대응이 그 당시 상황에서 별 문제가 없었다는 게 점점 밝혀지고 있지만, 혹시 뭔가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 하나만으로 바로 여경 무용론으로 이어진다는 것 자체가 여성경찰로 일하고 있는 입장에서 솔직히 힘이 빠져요.”

주취자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여성 경찰관의 대응이 미숙했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는 계기가 됐던 동영상의 한 장면. 사진 서울 구로경찰서 제공

반복되는 ‘여경무용론’을 보며 여경들은 어떤 생각이 들까. ‘대림동 여경’ 논란이 한차례 들끓은 후 사실관계가 명확해지면서 논란이 조금씩 정리되는 모양새지만 여파는 남아있다.

대림동 여경 논란과 뒤따른 여경 무용론은 지난 15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경찰의 취객 제압 영상이 올라온 이후 시작됐다. 최초 올라온 15초짜리 영상을 보면 술 취한 남성이 남성 경찰의 뺨을 때리자 이 경찰은 팔을 꺾어 남성을 제압했다. 다른 술 취한 남성이 체포 과정을 방해하자 여성 경찰이 제지하다가 밀려났고 무전으로 지원요청을 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이에 여성경찰이 주취자를 제대로 제압하지 못했다는 비난이 일었다.

이후 해당 경찰들이 속해 있는 서울 구로경찰서가 원본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또 다른 논란이 일었다. 이번에는 여성 경찰이 “남자분 한 명 나와달라” “(수갑) 채워요”라고 말한 부분에 대해 일반 시민에게 수갑을 채워달라고 한 거냐는 비판이 나온 것이다.

이에 대해 당시 여경을 도와 수갑을 채운 다른 경찰은 “수갑을 나한테 줘서 여경과 같이 수갑을 채웠다”고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당시 여경은 취객을 무릎으로 제압한 상태였고 동료 경찰과 함께 수갑을 채웠다는 점, 시민에게 도움을 청한 사실은 있지만 이는 상황통제에 필요한 일이라면 당연히 필요한 일이라는 점도 확인됐다.

그러나 온라인상에선 여전히 당시 현장 여경을 상대로 한 비판이 난무하고 이를 보는 여경들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어했다.

경찰로 일한 지 약 10년이 된 한 여성경찰은 20일 내일신문과 통화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갑자기 불필요한 존재가 되어 있더라”면서 “여경무용론이 한두 번 제기된 것은 아니지만 최근에는 정말 정점을 찍고 있다고 할 정도로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현장에서는 여경이 불필요하기는커녕 오히려 여경이 부족하다는 게 주지의 사실이다. 서울 지역 지구대에서 일하고 있는 한 여경은 “여성 피의자나 주취자의 경우에는 남성경찰들이 다룰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일부 지구대에서는 다른 지구대에서 여경을 빌려올 정도"라면서 "현장에서 여경은 ‘무용’한 존재가 아니라 절실히 필요한 존재”라고 했다.

여경무용론이 나올 때마다 거론되는 체력시험에 대해서는 여경들도 할 말이 많다. 다른 여성경찰은 “여경과 남경에 대한 체력기준이 다르다는 게 계속 문제가 되던데 여경들에게 물어보면 열이면 열, 차라리 똑같은 체력기준을 적용하라는 이야기를 할 것”이라면서 “사실 이 부분도 들여다봐야 할 지점이 많은데 해외의 경우 일정한 체력기준을 두고 남성이든 여성이든 통과하기만 하면 되는 방식을 채택한다. 반복되는 여경무용론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경찰 채용제도에 대해 근본적으로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실제로 경찰 출신의 표창원 의원은 20일 CBS 라디오에서 “(영국에선) 경찰관 업무에 적합한 신체조건을 갖춘 사람을 뽑는 것이 아니고 경찰 업무에 필요한 체력과 기술은 경찰관이 된 이후에 훈련을 통해 갖추도록 해주겠다는 게 기본 태도”라면서 “만약 힘만으로 뽑는다면 격투기 선수나 운동선수만 경찰관이 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일각에선 이번 논란의 근저에는 공권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데 대한 불안감이 있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적절한 응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경찰서장은 “대중의 분노가 엉뚱하게 여경을 향하긴 했지만 당시 현장 경찰들이 매뉴얼대로 대처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취객 대처에 시민들 도움을 구할 정도라면 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면서 “이런 불안감에 대해선 경찰의 고민뿐만 아니라 공권력 경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선 기자 egoh@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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