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공공변호인 도입 법조계 비판 거세

법무부 "관리위원회 운영에 관여 못해"

"검찰청과 법률구조공단은 모두 법무부 산하기관이다. 법률구조공단의 관리를 받는 변호사가 검사와 대등한 지위에서 피의자를 실질적으로 변호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법무부가 지난 3월 입법 예고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하는 '법률구조법 개정안'에 대한 법조계의 비판이 거세다. 제도의 도입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법무부 산하의 법률구조공단이 운영하는 것은 국선 변호의 독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이유다.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공청회│21일 오후 서초구 양재동 엘타워에서 형사소송법 및 법률구조법 일부개정안에 대한 공청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양홍석 공익법센터 소장, 양시훈 서울고등법원 판사, 박하영 법무부 법무과장, 오종근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교수, 이우영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영훈 대한변호사협회 인권이사. 사진 법무부 제공


◆"형사공공변호인은 글로벌 스탠다드" = 21일 오후 서초구 양재동에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도입을 위한 형사소송법 및 법률구조법 일부개정안 공청회'가 열렸다.

법무부 박하영 법무과장은 발제에서 "OECD 국가 중 29개국에서 이미 피의자에게 국선변호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며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는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말했다.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는 원칙적으로 재판과정에 있는 피고인에게만 실시되던 국선변호인 제도를 경찰이나 검찰 수사단계에 있는 피의자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법무부안은 '체포된 미성년자, 농아자 및 심신장애의 의심이 있는 자와, 단기 3년 이상의 징역 또는 금고에 해당하는 중죄 사건으로 체포된 피의자'를 형사공공변호인 제공 대상으로 한다. '피의자 국선변호 관리위원회'가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독립해 운영관리하는데, 관리위원회는 대법원장, 법무부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이 각 3인씩 추천하는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법무부는 관리위원회가 제도를 전반적으로 운영하되, 전국적인 조직을 갖춘 법률구조공단의 시설을 이용하게 할 계획이다.

법무부는 "피의자 국선변호 활동은 이해충돌 방지를 위해 공단에 소속되지 않은 개업변호사를 활용할 것"이라며 "현행 국선변호제도를 참조해 기존 업무와 겸임해 국선변호활동을 하는 계약 변호사와 국선변호 업무만을 전담하는 국선전담 변호사를 적정 비율로 배정해 운영한다"는 입장이다.

◆"검사와 대등하게 변호 의문" = 서울고등법원 양시훈 판사는 "법률구조공단 산하 관리위원회의 관리를 받는 전담변호사는 물론 계약변호사도 검사와 대등한 지위에서 피의자를 실질적으로 변호할 수 있을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검찰청과 구조공단은 모두 법무부 산하기관으로 조직상으로나 인적 구성면에서 법무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양 판사는 "형사공공변호인의 선발을 심의하기 위해 관리위원회를 설치한다고 해도 선발 및 위촉은 구조공단이 담당하는 점을 고려할 때 독립성의 문제는 해결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우영 교수는 "법률구조공단을 통한 피의자에 대한 국선변호 제공은 현실성 있는 선택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법률구조제도 운영주체의 독립성 요구에 비추어 대한변호사협회가 주관하는 방향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한변협 산하에 공익법인으로서 법률구조 특수법인을 설립해 행정부나 사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도록 하되, 법무부와 법원이 운영과 업무수행을 포함한 모든 단계에서 평가와 감시 기능을 행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인 양홍석 변호사도 "법률구조공단이 형사공공변호인 운영위원회 업무를 하기에 매우 부적절한 조직"이라고 주장했다.

양 변호사는 "현재 법률구조공단의 각 지역사무실 구조가 독립된 사무공간을 내어줄 수 없는 형편이므로, 외부에서 볼 때도 운영위원회가 법률구조공단과 한 몸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며 "물적 기반이 없는 조직의 독립성은 기대하기 어렵고, 운영위원회 사무국이 사실상 법률구조공단 사무실 내에 있게 되면 운영위원회가 사실상 법률구조공단의 산하조직과 같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체포후 석방 피의자까지 필요한지 검토 = 양 판사는 "피의자에게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함은 당연하지만, 논리필연적으로 피의자에 대해 국선변호인제도를 시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사법경찰관이 긴급체포한 11만 2249명 중 40.6%에 달하는 4만5577명이 구속되지 않고 석방됐다.

특히 경찰 긴급체포 후 경찰이 아예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은 경우가 2만6957명에 이른다.

그는 "필요하지 않은 긴급체포가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법무부안에 따르면) 일률적으로 국선변호인이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데, 그러한 필요성이 있는지도 검토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체포영장에 의한 체포의 경우도 이 같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체포영장이 집행됐다가 구속영장이 청구되지 않고 석방되는 피의자까지도 일률적으로 국선변호인이 선정돼야 하는지 합리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 양 판사의 설명이다.

◆"빈곤한 자도 대상에 포함시켜야" = 법무부 개정안에는 빈곤 그 밖의 사유로 변호인을 선임할 수 없는 경우는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이용할 수 없다. 이는 현재 경제적 '무자력자'인 피고인에 대해 국선변호를 허용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큰 차이가 있다.

정영훈 대한변협 인권이사와 양 변호사는 모두 무자력 요건을 추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무자력 요건은 체포·구속된 피의자, 중죄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외에 체포·구속되지 않았지만 무자력인 경우, 중죄 혐의를 받지는 않지만 무자력인 경우와 같이 형사공공변호인 선정대상 범위를 확대하는 요건으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 양 변호사의 설명이다. 체포·구속된 피의자에게 무자력 요건을 요구할 경우 당장 무자력 요건을 증명하기 전에 이미 1회 조사가 끝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김정욱 변호사(한국법조인협회 회장)는 "현재 개정안은 자력이 충분하면서 3년 이상의 중범죄 혐의가 있는 자에게도 국민의 소중한 세금으로 모든 구조를 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이런 부분에서 국민들이 동의할 수 있을지 매우 의문"이라고 말했다.

안성열 기자 son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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