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경 국가교육회의 의장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예전에는 잠수함에 토끼를 태우고 다녔다고 한다. 토끼는 사람보다 산소 부족에 훨씬 민감해서 잠수함의 공기가 나빠지면 먼저 쓰러진다. 잠수함의 승무원들은 토끼가 쓰러지는 걸 보고 늦지 않게 물 위로 떠올라 환기를 함으로써 위기를 모면한다. 어쩌면 세월호에서의 무고한 희생이 한국이라는 잠수함의 토끼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무고한 희생 덕에 한국이라는 잠수함은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환기를 위해 물위로 떠오를 수 있었다.

물 위로 떠올랐으면 얼른 환기구를 열어 환기를 해야 한다. 그런데 환기구를 여는 손잡이를 여러 사람이 붙들고 열어야 한다느니 열면 안 된다느니 옥신각신 시간만 허비하고 있다면 참 얼마나 속 터지는 일일 것인가? 요즈음 극한의 여야 대치, 그로 인해 지지부진한 국가교육위원회 입법을 보는 솔직한 심정이다.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에 적극적

초중등 교원들은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든 진보 보수 가리지 않고 국가교육위원회 설립에 대해 적극적이다. 아이들은 사회변화를 반영하여 이미 교실붕괴, 왕따, 학교폭력 문제가 사회문제로 등장하던 1990년대 초에 질적으로 달라졌다. 그런데 학교시스템은 산업화 시대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이 변화된 아이들과 변화하지 않은 학교시스템의 괴리로 문제가 더욱 악화되어 유사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가 전염병처럼 번지던 2000년대 초를 분기점으로 교육문제 중심 양상이 달라졌다. 이제 지식전수 이전에 과반을 훨씬 넘는 아이들이 자기정체성 형성이 잘 안되어 자기 삶에 의욕없이 교실에 앉아있는 게 문제이다. 수업하기가 어려운데 뾰족한 해결방법을 찾을 수 없는 교사들은 고통스럽다. 변하지 않은 획일적 교육시스템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변화된 아이들은 더욱 고통스럽고, 변화된 아이들을 산업화 시대의 획일적 입시경쟁에 맞추기 위해 나날이 더 많아지는 사교육비를 들여 촘촘히 관리해야 하는 학부모도 고통스럽다.

한국의 대학은 일제강점기에 독일의 엘리트주의 대학 모델을 받아들여 시작되었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을 엘리트, 영재로 보아 선발할 땐 모든 것을 잘 할 것을 요구하지만 일단 대학에 들어오면 무한한 자유를 허용하는 체제이다. 이 엘리트주의 교육체제는 대학진학률이 10% 남짓이었던 1970년대까지는 별 무리가 없었다. 그러나 졸업정원제, 대학설립 준칙주의로 대학진학률이 70%에 달하는 오늘날의 현실과는 너무 맞지 않는다. 70%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잘 하라고 요구하는 대입경쟁은 초중등 교육을 파행으로 내몰고 있고, 상위권 대학과 동일화하여 일반대 전문대조차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비슷해진 대학은 변화된 경제사회현실과 맞지 않아 졸업해도 취업이 어렵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진학했지만 졸업해도 취업이 안 되는 청년과 그를 뒷받침한 학부모들은 고통스럽다 못해 허무하다. 여기에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이제까지 무풍지대에 가까웠던 대학교원 사회도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중장기적인 구상을 가지고 학제개편, 대학입시제도 개혁, 교육과정 개편, 교육자치 지방자치 개편, 교원 양성 임용 인사제도 개혁, 대학의 총체적 구조 개편을 추진해야만 하는 골든타임이다. 이러한 총체적 개혁이 5년 단임 대통령제 아래서 정부 지지도 여론조사에 일희일비하며 매일 매일 쏟아지는 현안을 관리해야 하는 교육부 시스템만으로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임기에 제한받지 않고 여야 합의와 사회적 합의에 바탕 해서 중장기 교육개혁정책을 입안하고 그 실행을 점검하는 국가교육위원회는 그래서 제안된 것이다.

총체적 개혁은 교육부 시스템만으로는 불가능

산업화 시대 한국은 서구 모델 따라가기를 했고, 교육정책 역시 고위관료가 미국교육정책 모델을 전공한 전문가의 프로젝트를 받아 내려보내 집행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런데 이제 한국도 선진국의 초입에 진입했고 인공지능 자동로봇 밀도가 압도적 세계 1위일 정도로 변화의 속도가 빠른 나라이다. 더 이상 따라갈 모델이 없고 스스로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국민적 지혜를 모아 스스로 길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국가교육위원회는 산소 부족을 앓고 있는 한국이라는 잠수함이 물 위로 떠올라 미래를 향해 여는 마지막 비상 환기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