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이래 미국은 지구촌 곳곳에서 적들만 만들고 있다. 적성국들은 물론 라이벌, 심지어 동맹국들까지 가리지 않고 미국이익 우선만 내세워 몰아붙이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관세폭탄을 투하하며 무역전쟁을 벌이고 있다. 북한과는 전쟁 문턱까지 갔다가 협상으로 180도 반전시켜 놓고 있다. 이란과는 핵합의를 버리고 강압작전으로 돌아서 있다. FTA(자유무역협정)를 놓고서는 기존의 협정들이 미국에 불리하다며 한미 FTA부터 재협상했고 미국, 캐나다, 멕시코간 자유무역협정인 나프타(NAFTA)는 아예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으로 대체해 버렸다.

코퍼스 크리스티항에 위치한 모다 스트림사의 원유수출 터미널. 이 터미널에 원유 120만 배럴을 적재한 VLCC 규모의 유조선이 정박해 있는 모습.


미국이 지구촌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싸움을 걸수 있는 배경에는 독보적인 군사력과 경제력이 있기 때문이겠지만 근년들어서는 셰일(Shale)오일과 가스를 대량 생산해 최대 오일 생산국으로 올라선 것이 최대무기로 활용되고 있다.

미국 지구촌 최대 산유국으로 부상

미국의 셰일가스와 오일은 세계 에너지 판도를 뒤바꿔 놓았을 뿐만 아니라 미국의 슈퍼파워 유지, 라이벌을 압박하는 최대 무기로 떠올랐다. 셰일(Shale)은 비교적 얇고 잘 벗겨지는 퇴적암을 말하는데 검은 회색 또는 갈색의 이 암석에서 가스와 원유를 캐내고 있다. 특히 미국은 수압으로 이 암석을 파괴시켜 가스와 원유를 추출해내는 첨단기술로 셰일가스와 오일의 생산을 급증시켜왔다.

미국은 2008년부터 미국 내 석유와 가스 생산을 극대화 시켜왔으며 10년도 안돼 이제는 지구촌 최대 산유국으로 올라섰다. 미국의 원유 생산은 2008년 하루 500만배럴 이었으나 2019년 상반기 현재 평균 1210만배럴로 2배 이상 늘어났다. 이는 러시아의 1055만배럴, 한때 최대 산유국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의 1010만배럴을 모두 추월해 최대 생산국이 된 것이다.


특히 미국의 생산량은 이제 전체 유가를 좌우할 정도로 급증해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나 일부 국가들이 전격적인 감산을 단행하면 국제유가가 급등할 수 있는데 미국이 생산을 증가시키면서 수입량을 대폭 줄이고 있기 때문에 감산 여파를 완충 또는 무력화시키는 역할까지 맡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셰일오일과 가스는 지구촌 에너지 시장의 흐름과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은 셰일가스와 오일을 포함한 미국내 원유생산을 계속 늘려왔고 원유수출까지 40년 만에 허용함으로써 원유수입과 수출의 균형을 맞추는 에너지 자립국으로 올라서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20년에는 천연가스 순수출국으로, 2035년에는 원유 순수출국으로 전환할 것으로 예고된다.

중국, 러시아, 오펙과 석유전쟁에도 자신

미국은 셰일오일 덕분에 중국과 러시아, 오펙과 석유전쟁에도 밀리지 않는다는 자신감을 과시해왔다. 미국은 중국과 슈퍼파워 게임에서도 셰일오일과 가스 파워를 믿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셰일오일을 대량 생산해내기 시작한 2008년 이전에는 미국과 에너지 전쟁을 치르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한바 있다. 이라크 유전확보에만 1000억달러를 투입했고 중남미, 아프리카 할 것 없이 석유시장을 확보해 미국과 에너지 전쟁을 벌였다. 미국은 중국의 반대를 일축하고 이라크 침공을 강행해 중국이 투자한 1000억달러를 사실상 무위로 돌리게 만들었다.

미국은 또 러시아 푸틴 정권을 꼼짝 못하게 압박하는 무기로 셰일오일과 가스를 활용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셰일오일과 가스 생산을 대폭 늘려 유가를 급락시킴으로써 러시아가 유가급락과 루블화 폭락으로 경제붕괴 위기에 내몰도록 만드는 전략을 쓴바 있다. 블라드미르 푸틴 대통령이 이끄는 러시아는 정부 수입의 절반을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로 충당해 왔는데 국제유가 급락은 경제붕괴 위기로 내몰리게 된다. 푸틴 대통령은 소치 올림픽과 러시아 월드컵 주최, 그리고 정권 유지를 위해 엄청난 돈을 투입했고 석유와 천연가스를 팔아 충당해야 하는데 미국이나 오펙이 국제유가를 떨어뜨리면 그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정권마저 흔들리기 때문에 미국에 아킬레스건을 잡힌 모양새다.

심지어 미국은 셰일오일과 가스 덕분에 오펙을 이끄는 맹방인 사우디아라비아를 옥죄는데에도 성공하고 있다. 때때로 미국이 셰일오일과 가스로 유가를 급락시키면 오펙과 석유주도권을 되찾으려 석유전쟁(Oil War)을 벌이곤 한다. 미국은 수년전 배럴당 110달러였던 국제유가를 50달러 아래로 떨어뜨리는 오일전쟁을 일으킨 바 있다. 국제유가가 반토막 나자 미국도 큰 손해를 보았지만 치명타를 맞은 나라들은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이기 때문에 석유전쟁, 나아가 파워싸움에서도 분명 미국이 가장 이익을 보았다는 평을 들었다.

다만 미국은 지나친 유가폭락으로 자국의 셰일 오일과 가스 업계도 파산하는 등 부작용을 겪은 경험이 있어 그 수위를 조절하는데 애를 쓰고 있다. 미국으로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42달러 안팎을 유지하면 미국 내 셰일 오일업계가 버틸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그 수준에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미국과 오펙을 이끌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분명 석유주도권을 둘러싼 석유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적정수준까지는 사실상 짜고 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미국은 셰일 오일과 가스를 무기로 중국과 러시아, 이란을 옭아매야 하지만 이란의 앙숙인 사우디아라비아와는 손을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면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