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지 않고 불용 사업 수두룩

국회 예정처 "국가재정법 위배"

입법부의 의결을 받지 않고 행정부가 자체 지침으로 나눠쓰는 예비비가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측하기 어려운 긴급한 사안에 투입해야 하는 기본 취지와 어긋난 사업이 다수 발견됐다.

19일 국회 예산정책처는 '2018년도 결산 총괄분석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예비비 신청 및 배정, 지출결정 및 집행과정에서 국가재정법의 관련 규정에 부합하지 않는 등의 문제점이 발견되었다"며 "예비비에 대한 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예비비는 헌법(55조제2항25)과 국가재정법(제22조26)에 따라 예측할 수 없는 예산 외의 지출이나 예산 초과지출에 충당하기 위해 일반회계 예산총액 1% 이내에서 배정된다.

예산편성할 때는 총액으로 국회의 의결을 받는다. 결산서는 국무회의 심의와 대통령의 승인을 거친 예비비사용명세서와 함께 매년 5월말까지 국회에 제출된다. 예비비 사용내역을 사전에 국회에서 검증할 수 없는 셈이다. 결산심사가 중요한 이유다.

◆집행지침 어긴 사례 다수 확인 = 예정처는 예비비 배정이 '2018년도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어긋난 측면을 집중 분석했다.

이 지침은 각 부처 장관이 예비비 요구에 앞서 당초 본예산 편성시 예측할 수 없었는지, 연도 중에 시급하게 지출해야 할 필요성이 있는지, 기정예산으로 충당이 가능한지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적시했다.

법무부의 '국가배상금 지급 사업'은 연례적으로 예비비를 배정받고 있는데도 예산 편성때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평가다. 법무부의 '맞춤형 일자리 창출' 사업은 대부분 기록물 정리와 관련된 업무보조 인력을 단기간 채용한 것으로, 시급성이 요구되는 사업으로 보기 어렵다고 봤다.

'자전거 교통사고 위험지역 실태조사 및 정비사업'과 관련, 행정안전부는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중 자전거 사고 피해자 비중이 2008년 5.3%(313명)에서 2017년 6.3%(265명)로 증가해 자전거 교통사고가 집중되는 사고 다발지역의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었다고 편성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예정처는 "자전거 교통사고 사망자 비중이 9년 간 1%p 증가했다는 것이 급격한 증가로 보기 어렵고 자전거 사고 피해자는 2017년이 2008년 대비 감소한 상황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동 사업이 연도 중 시급하게 지출할 필요성이 있는 사업으로 보기 어렵다"고 평가했다.

불법어업 행위의 유형과 실태를 조사하는 해양수산부의 명예어업 조사원 채용을 통한 불법어업 실태조사 사업 역시 "명예 어업조사원은 불법어업에 대한 단속 권한이 없어 기초조사 역할에 그친다는 점에서 단기간에 나타날 수 있는 사업효과가 제한적이므로 사업을 긴급히 시행할 필요성이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2018년 위기지역 및 업종에 대응한 7개 기술개발 R&D 신규사업의 연구비 집행이 2019년에 이뤄진다는 측면을 고려하면 예산집행의 시급성이 부족하다는 점도 산업통상자원부를 대상으로 제기했다.

예정처는 예비비 지출요건에 안 맞는 사업도 지목됐다. 지침에서는 예비비가 세출예산으로 배정되기 전에 이를 집행하여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관련 공론화 추진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예비비 배정 전에 지출원인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예비비가 배정되기 전에 단기 인력을 채용해 관련규정을 위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재해, 위기 지역 예비비도 '불용' = 예비비 집행과정에서의 문제점도 제기됐다. 지침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타 사업이나 타 비목으로 이·전용할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계, 출판계, 대중문화계의 성폭력 실태조사사업은 실태조사 연구기간이 연장돼 4억 7300만원이 이월됐다.

재해 피해 농업인에게 재해복구에 필요한 비용을 융자하기 위한 재해대책비(융자) 사업에 예비비 21억 9300만원을 배정받았으나 이중 98.6%인 21억 6200만원이 불용됐다.

산림청은 산림휴양녹색공간조성 사업 수행을 위해 통영시에 산림공원과 산림조경숲을 조성비용 7억 5000만원, 거제시에 등산로 정비비용 2억원의 예비비를 배정했으나 모두 연내에 조성공사에 착공하지 못해 고용·산업위기지역의 고용창출 및 경제활성화라는 당초

목적을 적기에 달성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의 두동지구 진입도로 사업의 설계비는 전액 이월됐으며 중소벤처기업부의 소상공인·자영업 지원대책안내와 일자리안정자금 및 소상공인 전용 결제시스템 홍보를 위한 서포터즈 운영사업비도 대부분 집행되지 못했다.

2019년 신규 독거노인 및 기존 서비스 이용 노인 중 재산정 조사 대상자 등 약 34만명의 현황조사를 실시하기 위해 2018년 말 2개월간 2470명의 인원을 투입한 것은 과다한 측면이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고용위기지역으로 지정된 전북 군산, 전남 목포 지역 버스정류장 시설지원 사업도 전액 불용처리됐다.

예정처는 "예비비의 방만한 운영은 정부의 임의적인 재량지출을 확대하고, 입법부의 예산 심의·확정권을 우회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예비비의 이월 및 불용은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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