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케다·다나카 전 수상 등

통상교섭 통해 정책통 부상

최근 한국에서도 크게 알려진 일본 내각의 장관급인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사진)의 행태에 국민적 공분이 모이고 있다. 일본 언론에서 조차 아베 신조 총리의 직접 지휘하에 세코 경제산업상이 외교를 담당하는 외무성을 따돌리고 한국에 대한 경제 압박에 총대를 메고 나섰다고 분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21일 현재의 경제산업상인 옛 통산상이 전후 일본 총리의 1/3이 거쳐간 핵심적인 보직이라고 분석했다. 지금의 경제산업성은 2001년 일본의 성과 청이 개편되기 전까지 통산성으로 불렸다. 이 자리는 대장상, 외무상과 함께 총리가 되려는 정치인으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자리이다. 실제로 전후 일본의 총리대신 33명 가운데 11명이 통산상의 자리를 거쳐 간 것으로 조사됐다.

니혼게이자이는 "전후 수많은 미국과의 힘겨운 무역협상을 담당하고, 고도경제성장을 이끌어 오면서 총리가 된 사례가 많다"고 분석했다. 대표적으로 이케다 하야토 전 총리이다. 이케다 전 총리는 1957년 자민당 내에서 '고우치카이'라는 파벌을 만들어 1959년에 '월급배증론'을 주창하면서 정치적 무게감을 키웠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이기도 한 기시 노부스케 정권에서 통산상을 맡았다. 이케다 전 총리는 통산상 재직시 미일안보조약 개정문제로 정치적인 혼란이 극에 달했던 때에 경제정책의 적극적인 변화를 추구해 1960년 총리 자리에 올랐다.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도 통산상 출신이다. 사토 에이사쿠 전 수상은 1971년 마직막 내각 개각에서 다나카 전 총리를 통산상에 기용했다. 다나카 전 총리는 당시 이미 대장상과 자민당 간사장을 경험한 거물 정치인으로 통산상에 오른 이후 미국과의 섬유관련 교섭에 나섰다. 미일간 섬유협상은 당시 오키나와의 일본 반환 등과 맞물려 일본에게는 국가 운명과 직결된 핵심적인 현안이었다.

다나카 전 총리는 미국의 일본산 섬유에 대한 수출제한 요구 등에 대해 2000억엔을 섬유업계에 내놓으면서 적극적으로 미국과의 협상을 이끌었다. 다나카 전 총리는 닉슨 행정부와의 섬유교섭을 타결시킨 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승리해 총리의 자리에 올랐다. 오오히라 마사요시, 미야자와 기이치 전 총리 등도 통산상을 맡았었다.

1994년 자민당과 사회당 연립정권에서 무라야마 전 총리 시절 하시모토 류타로 전 총리가 통산상으로 재직했다. 하시모토 전 총리는 통산상 재직시 미국과의 자동차 분쟁 과정에서 미키 캔터 통상대표부(USTR) 대표와 교섭을 담당했다. 하시모토 전 총리는 통산상 재임중이던 1995년에 자민당 총재 선거에 나서 승리했고, 이듬해 자민당 출신 총리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처럼 통산상이 총리에 오른 핵심 보직이 된 이유로는 구체적인 정책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경제산업성으로 바뀐 2001년 이후에도 경제산업상 자리는 집권당의 중진 정치인들이 가고 싶어하는 자리로 인기가 많다. 수출관리나 무역문제 등을 다루는 경제산업상은 보호무역주의화되는 추세에서 향후 갈수록 중요성이 부각된다.

특히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경제산업상의 무게감은 크게 늘어났다고 니혼게이자이는 분석했다. 이 신문은 "한국에 대한 수출관리 규제를 결정한 것은 세코 히로시게 경제산업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의 무역전쟁과 일본과의 무역교섭 등을 포함해 보호무역주의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도쿄전력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수 문제나 신규 원전 증설문제에서도 역할이 커지고 있다"고 했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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