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두고 교차로마다 난립

지자체가 단속하면 정당 항의

과태료 부과해도 법원이 제동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을 앞두고 정치인 얼굴·이름이 들어간 '현수막'이 전국의 주요교차로를 점령하다시피하고 있다. 내년 4월 총선이 가까워지면서 정치인들의 '현수막' 걸기 경쟁이 심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정된 게시대가 아닌 곳에 내걸린 현수막은 모두 불법이다. 지자체가 단속에 나서고 있지만 단체장 공천권을 쥔 정당들은 오히려 큰 소리 치기 일쑤다. 그러다보니 '불법 현수막'은 국회의원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특권이 되다시피 했다.

◆불법 현수막은 도시미관·시민안전 저해 = 그러나 수도권 일부 지자체와 정치인들 사이에 '불법 현수막'을 근절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경기도 수원시 화서동 한 교차로에 정치인들의 추석인사 현수막이 걸려 있다. 옥외광고물법에 의하면 이들 현수막은 모두 불법이다. 곽태영 기자


서울 서대문구가 대표적이다. 문석진 구청장이 직접 칼을 빼 들었다. 문 구청장은 차에 커터칼을 가지고 다니면서 불법 현수막을 발견하면 직접 철거하기도 했다. 문 구청장은 "불법 현수막은 도시 미관 뿐 아니라 시민 안전과 직결된 문제"라며 "재선 이후 정당에 양해를 먼저 구한 뒤 현수막 철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당이 내건 불법 현수막에 예외를 허용하면 일반 상업용 불법 현수막 단속 시 형평성 문제가 대두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정당은 행사·집회 안내 등을 위해 현수막을 걸 수 있지만 '이미지 광고' 등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에 서대문구는 정당 현수막을 합법적으로 걸 수 있도록 지정 게시대 10곳에 1면씩 10면을 추가로 마련했다.

하지만 막상 단속이 시작되자 항의가 빗발쳤다. 구청 앞에 와서 현수막 철거에 항의시위를 하는 정당도 있었다. 문 구청장은 "원칙에 따라 여야를 막론하고 각 정당 불법 현수막은 물론 분양광고 등 불법상업 현수막도 모두 철거하고 있다"면서 "단체장들이 의지를 가지고 지속적으로 단속해 '불법 현수막은 안된다'는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권·불공정 없애자면서 불법 반복" = 경기 안양지역 민주당 당원인 이승수씨는 최근 안양시 지정게시대에 일본제품 불매운동 동참과 추석 인사를 담은 현수막을 게시했다. 그러면서 이씨는 SNS 등을 활용해 "불법적인 '현수막 정치' 이제 그만 하자"는 캠페인에 나섰다. 이승수씨는 "인지도를 높이고 싶은 정치인들의 욕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정 걸고 싶다면, 일반시민들과 똑같이 돈 내고 안양시 지정게시대에 걸면 된다"고 지적했다. 안양시 지정게시대 현수막 게시비용은 1주일에 1만6420원이다. 이씨는 "정치인들이 특권과 불공정을 없애자면서 알면서도 불법행위를 반복한다는 것은 잘못"이라며 "지자체가 불법현수막을 강력하게 단속하는 동시에 게시대를 늘려줘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자체가 정치인 불법 현수막에 대해 강력한 단속을 통해 과태료를 부과해도 법원이 면죄부를 주는 경우도 있다.

인천 남동구의 경우 지난 2017년 정치인 불법 현수막에 대해 5000만원이 넘는 과태료를 부과한 바 있다. 옥외광고물법에 따르면 모든 광고물은 신고·허가받게 돼 있고, 이를 어길 경우 최고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남동구는 당시 불법 현수막을 게시한 정치인 20명에 대해 5800여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다. 이들 가운데 자진납부한 2명을 제외한 18명이 이의신청을 해 비송사건절차에 따라 재판이 진행됐다. 하지만 인천지법은 "위법사실은 인정하지만 과태료 부과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라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남동구 관계자는 "일반인은 비송사건절차까지 가지 않고 과태료를 내거나 재판에 가도 과태료 부과조치가 뒤집어진 적은 없다"면서 "자진납부한 2건도 반환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곽태영 이제형 기자 tykwa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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