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입장에선 눈엣가시 제거 … 트럼프 입장에선 거북한 참모 배제

1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트위터로 경질 소식이 전해졌다. 경질 대상은 '전쟁광' '슈퍼 매파'로 분류돼 온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워싱턴 정가는 들썩 거렸다. 전격 경질을 둘러싼 해석이 분분하다. '효용가치가 다했다'는 분석부터 '의견충돌이 도를 넘어섰기 때문'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아무튼 북한 입장에서는 눈엣가시가 제거됐다. 그동안 북미관계의 걸림돌로 구체적으로 지목된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볼턴은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 등을 공공연히 언급할 정도로 슈퍼 매파로 분류돼 왔다. 트럼프 대통령과는 달리 북한과 대화나 협상보다는 제재와 압박 등에 공공연히 무게를 실었다. 이를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 보좌관이 굿캅(착한경찰) 베드캅(나쁜경찰)의 역할 분담을 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 역할 분담이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어졌거나 아니면 역할 분담 이상의 갈등이 불거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의해 트윗으로 전격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재직 시절 모습.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4월 9일 군 고위 지도부로부터 브리핑을 받는 자리에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함께 배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CNN, 폴리티코 등 미국 주요 언론들은 최근 볼턴 보좌관이 아프가니스탄, 이란, 베네수엘라, 북한 이슈 등과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과 크게 이견을 보여왔다고 전했다.

특히 당초 지난 8일 예정했다가 전격 취소된 트럼프 대통령과 아프가니스탄 무장반군조직 탈레반 지도자들과의 비밀회동과 관련한 갈등이 결정적 계기가 됐을 가능성에 미 언론들은 주목했다.

폴리티코는 탈레반 지도부의 캠프 데이비드 초청을 둘러싼 백악관 내부 상황이 지난 주말 NYT 등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탈레반과의 협상을 주도해온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등은 볼턴 보좌관 측이 언론에 관련 내용을 흘린 것으로 확신해 화가 났다고 보도했다. 탈레반과의 협상에 반대한 볼턴 보좌관 측이 캠프 데이비드 비밀회동 계획을 언론에 흘려 '언론 플레이'를 했고, 트럼프 대통령과 폼페이오 장관 등이 격노했다는 것이다. 볼턴 보좌관은 막판까지 탈레반과 평화협정을 막기 위해 노력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에서는 폼페이오 국무장관과의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WP는 볼턴 보좌관이 경질된 것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 가장 강력한 '적수'(adversary)였던 폼페이오 장관에 대한 볼턴의 승리(비밀회동 취소) 이후 곧바로 이뤄진 것"이라면서 두 사람 사이의 주도권 싸움으로 해석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날 볼턴 보좌관이 경질된 이후 "볼턴과 내가 의견이 다른 적이 많았다"면서 "대통령은 신뢰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그들의 노력과 판단이 미국 외교정책 이행에 있어 자신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을 가져야 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반도 관련 이슈인 북한 비핵화 관련해서도 볼턴과 트럼프 대통령과의 이견은 노출됐다. 특히 볼턴 보좌관은 최근 북한의 잇따른 단거리 발사체 발사에 대해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 위반이라는 주장을 공개적으로 제기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특히 김정은 위원장과의 친분을 과시하며 북한의 단거리 발사체에 대해 '작은 것들'로 안보리 결의 위반은 아니라는 취지로 발언했던 것과는 상당히 결이 다른 주장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는 '리비아 모델'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대북 압박의 최전선에 서기도 했다. 특히 '선 핵폐기· 후 보상'으로 대표되는 리비아 모델은 국가원수인 카다피 몰락으로 이어져 북한이 강력하게 반대한 방식인데 볼턴 보좌관은 이를 공개적으로 제기한 것이다.

북한 역시 볼턴의 이런 노선에 대해 공개적이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제기해 왔다. 북한은 한때 볼턴에 대해 '인간쓰레기' '흡혈귀'라 부를 정도로 거부감을 표시해 왔다.

경질의 진짜 이유와 배경이 어디에 있든 북한 입장에서는 현존하는 눈엣가시가 제거된 측면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사사건건 부딪치는 거북한 참모보다는 자신의 구상을 충실이 뒷받침할 참모를 원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볼턴 경질이 당장 북미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겠지만 후임 인사를 임명하는 과정 등을 통해 대화와 협상에 무게가 실릴지 아니면 제재와 압박에 무게가 실릴지 판가름 날 것으로 보여진다.

다만 현재 워싱턴 정가에서 볼턴 보다 더 강경한 인물이 트럼프 행정부에 새로 입성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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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철 기자 · 워싱턴 한면택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