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승 대한법무사협회장

조국 법무부장관의 인사청문을 거치면서 제기된 의혹에 대한 검찰수사 과정에서 피의사실 공표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이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떠오른 것은 1월 검찰이 약사법 위반사건의 보도자료를 배포한 경찰관에 대해 피의사실 공표죄로 수사를 진행하면서부터다. 이후 이를 문제 삼는 사례가 부쩍 늘었고 더 이상 이대로 둬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953년 제정 당시부터 형법은 엄격히 경고하고 있다. 검찰, 경찰 등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거나 이를 감독 및 보조하는 자가 직무상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소제기 전 공표한 때 3년 이하 징역 또는 5년 이하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말이다.

알 권리나 공익 목적을 빌미로 버젓이 자행

기소 이전에 이를 금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권이라는 소중한 헌법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 동안 봐왔듯 수사절차에서 법의 보호막은 구멍 뚫리기 일쑤다. 시민들조차 별다른 저항 없이 이를 당연한 것으로 여겨온 감이 있다.

법이 제 구실을 못하고 있는 사이에 불법이라는 악화가 인권이라는 양화의 자리를 꿰찬 것이다. 5.18, 6.10 등 숱한 민주화 여정을 겪으면서 인권감수성이 한껏 높아진 우리 국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아직도 알권리나 공익목적을 빌미로 버젓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수사기관으로서는 여론몰이이라는 압박수단을 통해 수사목적을 달성하고 재판까지 좌우하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음직하다. 여론을 뒤집는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일선 법관 목소리가 이를 뒷받침해 준다. 당하는 피의자 입장에서는 유무죄가 판별되기도 전 한순간에 죄인으로 낙인찍히는 신세를 면치 못한다. 이를 견뎌내지 못하고 자살로 이어지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다.

서초동 검찰청사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포토라인은 그 절정이다. 피의자에 대한 취재경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불의사고 예방을 위하여 비롯된 것이 피의사실공표의 장(場) 구실을 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에게 포토라인은 무죄로의 추정을 가로막는 흡사히 루비콘강을 떠올리게 한다.

법은 3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엄벌을 요구하고 있으나 있으나마나 한 법으로 인식된 지 오래다. 2000년 이후 단 한 차례도 해당 죄명으로 기소된 예가 없다는 공식통계가 이를 말해준다.

문제는 이것이 시대정신의 변화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수사기관 스스로를 위한 고려에서란 점이다. 이 법이 실효성을 가지게 되면 수사관서 종사자들이 피의자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들어만 놓고 지켜지지 않는 법은 법치주의를 해친다. 아직도 행정기관의 훈령이나 규칙으로 포토라인이 변칙적으로 운용되고 있음을 본다. 이는 중대한 인권침해 행위로 국가기관의 편법에 기댄 범법행위에 가깝다.

지나친 편견인지 몰라도 수사기관 눈에서 누구든 걸리면 끝장이라는 안하무인이 느껴진다. 시민이 잠재적 피의자로 비치지만 않아도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런 사정 아래서 무죄추정이니 피의사실공표죄니 하는 것도 다 소용없는 일이다. 법이 그 본래 목적인 사회방위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형사소송은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형사사법절차의 중심이 수사기관에서 법원으로 이동하면서 검찰 권력독점의 생태계가 바뀌고 있음을 뜻한다. 더불어 수사절차에서 피의사실을 공표하지 말라는 것으로도 읽힌다. 수사기관은 공정한 재판에 기여할 의무를 지며 이를 위해 적법한 증거수집에만 신경쓰면 된다.

알게 모르게 피의사실 공표에 노출돼 인권이 멍들어

인권은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침 영역으로 인간애로 나타난다. 피의자도 인권을 지닌 존재이므로 재판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돼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 검사는 공소장으로 말하면 될 뿐 달리 말이 필요 없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피의사실 공표에 노출되어 인권이 멍들고 있다. 최근 법무부가 공보준칙을 바꾸어 형사사건 공개심의위원회 신설 등을 검토한다는 말이 들린다. 논의에만 그치지 말고 하루빨리 제도적으로 정착시켜 더 이상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