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른 베르예 지음 / 홍한결 옮김 / 흐름출판 / 2만5000원

오보크, 써당, 주비곳 …. 낯선 국가 이름들이다. 지금은 없다. 이들의 존재는 '우표'가 말해줬다. 우표에 새겨진 문양과 글자를 따라가면 어디에 도달할까. 한 국가의 명운이 달라진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까.

우표 수집광인 노르웨이인 비에른 베르예는 사라진 국가들의 자취를 잡아내는 데 성공했다. 저자가 수집한 희귀 우표를 실마리 삼아 사라진 나라들이 표기된 과거 지도, 당시 현장의 기록, 역사가의 해석을 꼼꼼히 뒤쫓았다.

'오래된 우표, 사라진 나라'는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근현대(1840~1975년)까지 서구열강의 각축시대 135년동안 사라진 나라 50곳의 '사라지기 직전 역사'를 담았다.

저자는 역사가가 아니다. 그는 건축가다. 입체적 검증과정이나 고증을 거친 이야기는 아니지만 당시 상황에 감정을 더하지 않은 채 군더더기 없이 기술됐다. 보야카는 내전을 거듭하다 스스로 파멸했다. 양시칠리야왕국는 포격의 흔적 외엔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황폐해졌다. 슐레스비히는 주민투표로 나라 자체가 갈라졌다.

티에라델푸에고는 수백년간 평화로웠으나 열강의 교묘한 술책으로 15년간 광란의 살육이 자행됐고 원주민과 함께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존재는 없어졌지만 잊지말아야할 역사의 아픔도 기록했다. 영국은 오렌지자유국을 침입해 3만여명의 여성과 아이들을 굶주림 탈진 질병으로 죽게 만들었다. 독일은 해군기지를 짓기 위해 중국 해안도시 자오저우를 점령하고 식민지로 삼았다.

이탈리아는 트리폴리타니아를 점령해 상류층을 위한 국제항공기대회를 열었으며 일본은 만주국에 생화학무기를 개발하는 731부대를 위장 운영했다. 저자는 "나라 이름 하나하나는 대개 수수한 느낌이 들지 모르지만 그 이면에는 예외 없이 조작과 무력행사의 역사가 숨어있다"며 "국민들을 더 행복하게 해주려는 목적으로 영토를 갈랐던 경우는 한 번도 없었으니까"라고 했다.

우표는 영국의 교육자이자 발명가인 로렌드 힐에 의해 처음 발명됐다. 세계최초로 유통된 우표엔 빅토리아 영국여왕 초상화가 도안됐다. 서구 열강은 식민 경쟁을 펄치면서 우표도 같이 전파했다.

이 책은 우표가 정치적 욕망의 산물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우표는 우편요금을 대신하는 본연의 용도 외에 한 국가의 건재함을 상징하는 수단이었다.

주권을 가진 1000여개국이 우표를 만들었다. 패권을 쥔 권력가들은 우표를 발행해 영토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고 민족주의에 불을 지폈다. 자국의 이상화된 이미지를 담아 선전하고 선동하는 전략으로도 활용됐다.

저자는 '우표의 거짓말'을 꿰뚫고는 "우표란 일정의 정치적 선전으로 보아야 하며 진실의 전달이란 항상 부차적인 과제일 뿐"이라며 "눈앞에 놓인 우표의 두께 색깔 질감 냄새 맛 등의 구체적인 특성은 늘 믿을 만한 사료가 된다"고 말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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