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 부산대 교수 법학전문대학원 국제법

“베트남 해역에서 모든 중국 탐사선과 호위 선박은 즉각 철수하라” 얼핏 국가 간 분쟁을 다룬 소설 속 내용으로 오인할 수 있으나, 이는 지난 7월 중국 국영 석유탐사선 ‘하이양 디즈 8호’가 중국 해경경비함 3척의 호위를 받으며 스프래틀리 군도(Spratlys) 인근에 진입한데 대한 베트남 외교부 대변인의 항의 성명이다.

이처럼 남중국해가 중국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 다자간의 각축장이 된 이유는 1945년 일본이 패전하면서 그곳에 힘의 공백이 발생했고, 다른 국가들이 지리적 근접성 등을 근거로 도서 영유권과 해양관할권을 주장하기 시작하면서 분쟁이 촉발되었기 때문이다.

미국과 중국간 전략적 세력 경쟁에 기인

이에 더해 중국과 동남아 국가 간 해양 영토분쟁에 불개입 입장을 유지하던 미국이 국제관습법 및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기초한 ‘항행의 자유’를 역설하면서 복잡성이 한층 더해졌다.

남중국해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그곳에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략 110억 배럴의 원유와 190조 ㎥ 가량의 천연가스 등 경제적 요인에 연유한 것처럼 보이나, 그 이면에는 동아시아 해양패권을 장악하려는 중국과 기존 해양질서를 유지하려는 미국을 비롯한 연안국 간의 전략적 세력 경쟁에 기인한다.

남중국해 갈등의 당사국인 중국과 연안국은 물론 자국 이익을 앞세워 개입 의사를 밝힌 미국 역시 무력 충돌을 원치 않는 만큼 국제법에 기초한 문제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여기에 적용 가능한 국제법으로는 국제재판소 판례, 유엔 해양법 협약, 국제관습법 및 법의 일반원칙 등을 들 수 있는데, 특히 우리가 주목해야할 것은 전통적 국제법 기본 원칙 중 하나인 ‘육지가 바다를 지배한다(land dominates sea)’이다. 이 원칙은 육지영토가 있어야 인접 해양에 대한 주권적 권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어떤 국가가 특정 해역에 대해 오랜 시간 동안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다고 해서 당해 해역 내 존재하는 모든 도서 또는 암초에 대한 권원까지 가지고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6년 6월 필리핀이 중국을 상대로 국제상설중재재판소에 제소한 사건은 중국 완패로 일단락됐다. 중국이 법적 구속력이 없다며 판정 효력을 부인하면서도 남중국해 해양 지형물에 대한 역사적 권원을 주장하던 입장을 유보하고, 실효적 지배 노력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선회한 것도 위 원칙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중국은 전면전의 임계점을 넘지 않는 수준에서 현상변경을 위한 강압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회색지대갈등(gray-zone conflict)’을 주도하며, 상대국의 실효 지배력이 느슨한 도서에 대해 어선 해양경찰 경비함 해군함정이 에워싸서 점거하는 전략을 통해 점진적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동향은 우리가 독도와 이어도, 그리고 한·중·일 간 해양경계미획정 해역에서 실효적 지배력을 높여야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남중국해 문제는 중국과 연안국의 전략적 연대로 힘의 균형을 이룬 다자간 갈등임에 비해 한반도 주변 해역은 양자 간 갈등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이어도를 두고는 한・중 관계에 자국의 이익을 이유로 미국이 개입할 여지가 크지 않고, 독도를 놓고는 한・일 양국이 미국과 한 배를 타고 있음을 고려하면, 갈등은 결국 양자 간 해결밖에 답이 없기 때문이다.

해양경찰 조직을 주변국 수준 이상으로 확대했으면

얼핏 보면 해군을 비롯한 해양세력 증강이 필연적이나, 정말 조심해야할 점은 자칫 작은 오해에 기인한 사소한 충돌이 평화를 깨뜨리는 전면전으로 비화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軍(군)과 民(민)의 경계에서 완충제 역할을 할 수 있는 해양경찰 조직을 주변국 수준 이상으로 확대·강화하는 것이 상대국을 자극하지 않고 우리 바다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할 수 있는 합리적 대안일 것이다.

그동안 먼 바다 이야기로만 치부하던 남중국해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지금 당장 우리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진 않겠지만, 남중국해를 둘러싼 패권경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