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정협의 한번 뿐 … 법안처리율 20%대 그쳐

패스트트랙 의원 110명 묶여 … 윤리특위 없애

문희상 "이대로 가면 대의민주주의 죽는다"

"권력가진 청와대·여당, 협상 통로 만들 책임"

정치가 사라졌다. '정치상실시대'다. 여야 지도부의 만남은 형식이 됐고 협상 결과는 금세 파기되기 일쑤였다. 서로간 신뢰가 사라졌다. 결과는 법안통과실적으로 드러났다. 문제가 생기면 협상이 아닌 법정으로 가져갔다. 국민들은 광장으로 내몰렸다.

여야정협의체는 한번 열리는 데 그쳤고 여당 대표는 먼저 대화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명반대 분위기가 만만치 않은데도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임명하고 촛불집회를 두둔하는 발언 등으로 '분열의 정치'를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여야 지도부가 모여 '정치협상회의'를 진행하기로 했으나 어느정도나 성과를 보일지 불확실하다.

야4당대표에게 자리 권하는 문희상 의장 | 문희상 국회의장이 7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열린 초월회 오찬 간담회에서 야 4당 대표에게 자리를 권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의당 심상정,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문 의장, 바른미래당 손학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이날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참석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하사헌 기자


7일 문희상 국회의장은 당대표 모임인 초월회에서 "민생은 내팽개치고 진영싸움에 매몰돼, 국민을 거리로 내모는 그런 형국"이라며 "(국회의) 대립과 혼란을 부추기는 모습에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대로 가면 대의민주주의는 죽는다"며 "정치실종의 장기화는 민주주의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심각한 위기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분열의 정치, 편가르기 정치, 선동의 정치가 위험선에 다다랐다"며 "서초동과 광화문의 외침이 여의도로 머리를 돌리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광화문(태극기집회)과 서초동(촛불집회)에서 매주 세 대결에 나선 보수와 진보의 분열양상이 '정치실종'의 결과물이라는 분석이다.

여야간 실질적인 대화가 상실된 지 오래다. 여당 핵심관계자는 "야덩과 협상을 하려고 해도 서로 할말이 없다"면서 "지지층에만 기댄 정치를 하다보니 대놓고 반대하니 주고받는 협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만나봐야 할 얘기도 없고 합의할 것도 없어 이제는 안 만난다"고도 했다.

여야정협의체도 별 효과가 없었다. 지난해 8월 문 대통령과 여야 5당 원내대표가 '여야정 국정상설협의체'를 분기에 한 차례씩 운영하자고 합의했으나 단 한번 여는 데 그쳤다. 일본의 경제보복에 대한 여야정민관협의체도 별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의 '대화와 협상'이 자취를 감춰버린 모습이다.

이는 정치의 사법화, 국민의 정쟁참여, 법안 처리율 하락으로 이어졌다. 여야는 정쟁이 발생하면 윤리위 등을 통한 자정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곧바로 사법부로 달려갔다. 윤리특위는 지난해에 비상설위원회로 전환한 데 이어 올해 7월부터 아예 가동이 중단됐다.

선거법 패스트트랙 과정에서 발생한 폭력사태는 검찰고발로 이어지면서 국회의원 110명이 수사대상에 올라있다. 자유한국당 60명, 민주당 39명, 바른미래당 7명, 정의당 3명과 문희상 국회의장(무소속)이 피고발인신분이 됐다. 한미정상간 통화내용을 공개한 강효상 의원과 "문재인 대통령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친일파 김지태씨 유족들의 소송을 맡아 국가로부터 117억원을 돌려받았다"고 말한 곽상도 의원에 대해 민주당이 검찰에 고발했다.

여야간 극단적 정쟁속에 법안은 '후순위'로 밀렸다. 7일까지 20대 국회엔 2만2100건의 의안이 접수됐고 이중 국회의원이 낸 게 2만61건에 달했다. 처리된 법안은 전체 6354건이고 이중 의원이 발의한 것은 4772건에 그쳤다. 전체 처리율은 28.7%며 의원입법 처리율은 23.7%였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는 국민들의 요구를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정으로 반영하게 하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정치가 제 몫을 못하니까 국민들이 직접 나서는 것"이라며 "특히 최근의 촛불-태극기 분열양상은 정치권이 만들어낸 것으로 정책을 두고 벌어지는 광장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다. 이념을 두고 양극화된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에 수단인 협상과 대화는 권력을 가진 여당과 청와대의 권한을 나누거나 내려놓는 데서 시작한다"면서 "'사라진 정치'시대의 원죄는 당청에 있다고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7일 여야는 5당 대표들간의 정치협상회의와 함께 실무진의 선거법, 사법개혁법 등 패스트트랙 관련 법안 논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여당 핵심관계자는 "여야가 만나기로 한 것은 환영할만 하지만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나 성과를 낼지 모르겠다"며 다소 유보적인 입장을 내놓았다.

[국회의원을 감사한다 연재기사]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박준규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