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취임일이 2017년 5월9일이 아닌 2019년 11월 9일이었다면 취임사는 어떤 내용으로 채워졌을까. 지난 정부에 대한 냉철한 비판이 선행되고 '새 부대'에 담을 '새 술'이 가득 담겼을 것이다. 2년 반전의 취임사처럼 말이다.

집권 후반기를 출발하는 문 대통령의 신호탄은 그러나 '성찰'보다는 '성과'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1일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성과'를 먼저 챙겼다. 그는 "지난 2년반은 넘어서야 할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는 전환의 시간이었다"며 "국가를 정상화했고 정의와 공정의 가치를 사회의 전 영역으로 확대시켜 나가고 있다"고 자평했다. 이어 "사람 중심 경제로 전환해 함께 잘 사는 나라로 가는 기반을 구축하고자 노력을 기울였다"며 "지난 2년반동안 열심히 달려온 결과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토대가 구축되고 있고 확실한 변화로 가는 기반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믿는다"고도 했다.

그 다음에 뒤를 돌아봤다. 문 대통령은 "전환의 과정에서 논란도 많았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며 "정치적 갈등도 많았고 필요한 입법이 늦어지는 일도 자주 있었다"고 했다. "국민들께 드린 불편함이나 고통도 있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고는 "과거의 익숙함과 결별하고 새로운 길을 찾는", "어렵더라도 반드시 가야만하는 길"이라고 해명했다.

이어 향후 2년반동안의 '비전'을 제기하는 데 남은 분량을 할애했다. 혁신 포용 공정 평화를 언급하며 "국민이 변화를 확실히 체감할 때까지 일관성을 갖고 흔들림없이 달려가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끌고 온 정책들에 대한 '성찰'은 보이지 않았다. 전날 있었던 비서실장-안보실장-정책실장의 기자회견에서도 '성과'를 언급하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일관성 있게 끌고 갈 정책들이 "국민이 바라는 진정한 변화"인지, "최선을 다해 완수하겠다"는 것이 "국민과 시대가 요구하는 대통령의 소임"인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박근혜정부에 대한 차가운 평가 뒤에 나온 2년반전 광화문 광장에서의 취임사에 힌트가 있을지 모른다. "국민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저에 대한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유능한 인재를 삼고초려해 일을 맡기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야당은 국정운영의 동반자입니다. 대화를 정례화하고 수시로 만나겠습니다" "잘못한 일은 잘못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초심을 되돌아보는 작업은 현재를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을 허락한다. 조급해 성과를 향해 질주하면 주변의 나무가 보이지 않고 귀중한 것들을 놓칠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임기 전반기를 "씨를 뿌리고 싹을 키우는" 시기로, 임기 후반기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시기로 규정하고 "그래야 문재안정부의 성공을 말할 수 있다"는 주장은 '임기 5년 내에 모든 것을 하겠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임기 5년은 지속가능한 국가를 만드는 데 한계가 많다는 것은 역대정부에서 수차례 확인됐다. 5년은 씨를 뿌려 싹을 보기도 어려운 정책들이 많다는 점에서 '성과'보다는 '방향'과 '과정'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한 이유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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