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안, 지난해 '더불어한국당' 이어 올해는 '1+4'

민생법안 상정순위 후순위로 미뤄 '민생정당' 무색

더불어민주당이 자유한국당을 뺀 야 4당(바른미래당, 정의당, 민주평화당, 대안신당)과 손을 잡고 예산안, 패스트트랙(신속안거처리)법안, 민생법안을 일괄 상정키로 한 가운데 제1야당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예산안과 보수진영이 동참하지 않은 채 논의된 선거법을 통과시키는 것에 대한 부담이 가중될 전망이다. 민생법안에 앞세워 선거법, 사법개혁법을 처리하는 방안도 도마 위에 올라있다.

9일 여당 핵심관계자는 "한국당의 신임 원내대표가 협상의 여지를 보인다면 상정시점을 미룰 수 있다"면서도 "그렇지 않을 경우엔 현재 계획대로 예산안, 선거법,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검찰개혁법(검찰청법, 형사소송법) 순으로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민생법안 처리 문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도 했다.
'민생개혁입법 반드시 완수'│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이 대표 뒤엔 "민생개혁입법 반드시 완수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글이 적혀 있다. 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민생법안은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신청한 199개 법안들로 이 안에는 병역법, 포항재난특별법 등이 포함돼 있다.

민주당 내에서는 "민생법안을 먼저 처리하지 않으면 민생정당이라고 했던 민주당 스스로 민생을 뒤로 미룬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면서 상징적으로라도 민생법안을 선거법에 앞서 상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나온다.

199개 민생법안과 무쟁점 법안은 법사위까지 통과돼 본회의에 올랐으나 한국당이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을 막기 위해 전체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는 바람에 민주당에서 본회의를 무산시켰다.

◆"예산안 다음에 민생법안을!" = 예산안에 이어 민생법안을 올리고 그 이후에 선거법을 상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유치원 3법을 내놓은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공개적으로 문희상 국회의장과 여당 지도부에 '선 민생법안 상정'을 주문했다. 그는 "민생법안인 유치원 3법은 국회법에 따라 반드시 이번 정기국회안에 처리해야 하고 부의된 순서에 따라 우선처리 해야 한다"며 "국회법과 국민 요구에 따라 더 이상의 어떠한 의결방해 정쟁없이 표결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치원 3법은 패스트트랙 법안 중 가장 먼저 지정됐으며 330일이 지난 지난달 22일 이후 처음으로 여는 본회의에 자동상정된다. 선거법과 사법개혁법안은 지난달 27일, 이달 3일에 각각 법사위를 거쳐 본회의에 부의됐다.

'게임의 룰'을 주요 참여자인 보수진영이 빠진 상태에서 진보진영만 모여 결정한다는 것도 논란이다. '1+4'에는 보수진영이 모두 빠져 있다. 한국당과 함께 바른미래당의 유승민계 등이 제외된 상태다. '1+4'에 바른미래당 협상대표로는 오신환 원내대표가 아닌 김관영 최고위원이 참여하고 있다. 지역구와 비례 의석을 현재 '253석대 47석'에서 '250석대 50석'으로 바꾸고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에 의견접근을 보고 있다. 연동률에 대해서는 50%, 30% 등을 놓고 협의했으나 전날 합의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게임의 룰의 일방적 통과 = 보수진영의 반발강도가 높다. 한국당과 유승민계는 '1+4' 합의방식이나 패스트트랙 표결에 반대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몸으로라도 통과를 막겠다는 의지를 보였고 황교안 대표는 '선거법'과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반대를 내걸고 단식을 하기도 했다.

한국당을 패싱한 예산안 통과도 부담이다. 지난해에도 한국당과 손잡고 예산안을 통과시켜 '더불어한국당'이라는 비판을 받은 민주당이 이번에는 한국당을 뺀 나머지 정당과 예산안 협상을 완결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 중진 의원은 "선거법이나 예산안은 한 정당을 빼놓고 통과시키는 게 부담일 수밖에 없다"면서 "새로운 원내대표가 뽑히면 어떻게든 협상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현우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시 "선거법은 선거의 룰인데 주요한 참가자인 보수진영을 뺀채 합의안을 만들고 통과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어 보인다"면서 "선거법은 다른 법률과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패스트트랙 연대를 앞세워 한국당을 압박했으나 효과를 보지 못했고 결국 12월 17일 예비후보등록 시작일에 앞서 통과시켜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당이 협상여지가 없는 상황에서는 패스트트랙에 올라와 있는 법안에 대해 불가피하게 표결을 할 수 밖에 없다는 논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국회와 국정운영의 책임이 있는 여권에서는 향후 지지층 양극화와 국회 마비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 지형이 불리하게 움직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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